소설가 김재찬

▲소설가 김재찬.
▲소설가 김재찬.

소설을 소설가 혼자 쓰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얼핏 보면 그래 보인다. 이야기를 다루는 직업이 소설가 말고도 많지만, 작가의 손에서 시작해 작가의 손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장르는 소설이 유일하다. 

오로지 혼자서, 서재의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인물을 선보이고,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외롭고 고단한 일이다. 이 업종은 갓 등단한 신인이나 평생을 이 업에 종사한 원로나 모두 동일하다. 

그렇지만, 나는 어떤 소설도 나 혼자서 쓴 일이 없다. 
나와 함께 소설을 쓴 건 소설의 등장인물이었다. 나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천풍’을 쓰는 동안은 더욱 그랬다.

‘천풍’은 십 년도 훨씬 더 전부터 준비해온 장편이다. 
자료를 뒤지고,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만주와 중앙아시아, 러시아를 답사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을 모두 내려놓고 이 소설의 집필에 온전히 매달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한동안 코로나19로 외출을 못한 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꼬박꼬박 썼다.

세상의 일이란 동전처럼 다 양면이 있는 것이어서 때마침 들이닥친 코로나19가 서재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나를 도와주었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이 작품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과 그의 사람들이 지닌 굉장한 매혹 때문이었다. 

나를 앞서 달려 나가는 인물을 따라가기가 버거운 날도 있었다. 

그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서 자기 앞에 닥친 상황을 거침없이 돌파해나가는 경우였다. 인물들이 이렇게 일을 잘해주는 장면을 통과할 때는, 나는 거의 거저먹었다. 

그들의 생각과 선택, 행동을 부지런히 옮겨 적으면 되었다. 반대로 등장인물들이 자신이 직면한 출구를 찾지 못하면 나도 힘들어졌다.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등장 인물에게 묻고 토론했다. 지금까지 쓴 원고는 내가 등장인물과 매일 대화하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싸운 기록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 함께 행동했다. 그것이 소설가란 직업에 부여된 고단한 의무이자 매력이며, 소설가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19세기 후반 조선의 봉건사회에서, 일본의 침략에 맞서 가장 오래 싸우고, 가장 크게 이겼던 독립군과 조선과 만주, 연해주, 중앙아시아의 산천을 누비고 다녔다. 나는 우리 세대가 살아보지 못한 100년 전의 비를 맞고 바람을 맛보았다.

‘천풍’은 2012년 11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되돌아보니 9년여의 세월을 함께 보낸 셈이다. 
원래는 참혹한 조선시대 이후 굴곡의 역사를 다루고자 방대한 기획됐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유신통치 개막 직전인 1971년까지만 다루는 데도 예정했던 연재 횟수를 훨씬 넘겨버렸다. 

결국 계획했던 바의 절반에도 못 미쳐 마무리하게 돼 여간 죄송스럽지 않다. 

소설 ‘천풍’은 곧 분단 독재체제의 존립 명분과 일치한다. 국가보안법이 가장 끔찍한 감시탑이었고, 그다음이 친일-친미파 비판 금지라는 경고등이 보이면서 계속하여 군부와 독재 비판은 터부라는 옐로카드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민주화란 곧 외세를 탈피하고 민족 주체성을 확립해야만 실현 가능한 제도란 점에서 본 소설은 곧 민주 투쟁사의 피의 얼룩이나 다름없다. 

처음 이 소설 연재를 기획했을 때는 박근혜의 몽매한 파렴치 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여서 그 실상을 지난 시대 독재를 야유와 비판으로 실감나게 한껏 부각할 요량이었다. 

‘천풍’은 몽매한 독재의 부산물이기에 많을수록 지식인에게는 연옥(煉獄)의 계절이 된다. 

그러나 소설이 있어야 할 시대에 소설이 없고 곡필과 망언만 난무하며 더 비참한 지옥의 암흑이 된다. 
더 참담한 건 소설이 몸통인 언론매체를 권력이 전면 감시할 뿐만 아니라 언론인 스스로가 자진해서 그 감시와 통제를 한층 가혹하게 집행하는 패놉티콘(Panopticon, 전방위 감시) 체계의 단계이다. 

바로 박근혜 통치 때가 그랬다. 역대 정권도 시도할 수 없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언론매체의 독재체제 홍보기관 화가 박근혜에 의하여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이 체제는 창작의 주역들로 예술인이나 언론인 뿐만 아니라 SNS 활동을 하는 국민 다수까지도 감시와 억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천풍’의 첫 장은 만담가 신불출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회에서는 현대판 만담가들로 마무리 지을 예정이었다.

이런 취지에서 진실을 보도했던 2016년 10월 24일, JTBC가 삐끗하면 필화가 될 뻔했던 최순실 게이트를 공개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낸 1,700여만명의 촛불시민혁명이 시작되었다. 

세계사는 항상 언론탄압에 의하여 혁명이 일어났다. 
언론 통제가 절정에 이르면 예외 없이 언론탄압이 필연적으로 출현하였고 그에 따라 사회적인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 역사의 생리 구조이기 때문이다. 

연재 기간 내내 이 황홀경은 분노와 투지와 희망으로 점철된 민족사적인 최장기간에 걸친 범국민적 카니발이었다. 그래서 2017년 5월 9일은 분단 이후 최대의 축제일이 되었다. 

‘천풍’은 되도록 촛불 시민들 구호에 걸맞은 투쟁사를 찾아 시대별로 다뤄왔다. 

그러나 역사적인 대격변의 투쟁에 대한 열정 때문에 조금은 뒷전으로 밀려버린 것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되레 현장성을 지녔기 때문에 공동 보조역을 수행할 수 있었다.

미 군정기부터 이승만-장면-박정희 정권 전반부, 형식적이나마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했던 마지막 대통령(1971년 4월 27일)까지를 다룬 이 연재는 지면 관계상 각 사건의 역사적인 배경과 경위 전모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나는 송산을 위대한 인물로 그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송산을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새롭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천풍’은 여러 겹의 화자가 겹쳐져 있다. 

내포 작가와 내포 화자, 1인칭 서술자인 송산과 아버지와 봉준이를 통해 한 시대를 중층적으로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송산은 그들 모두를 연결해가며 그들의 비애와 희열, 도전과 좌절을 함께 겪어가는 관찰자다. 

그래서 나는 어떤 인물 하나도 마네킹처럼 세워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 모두를 심장이 뜨거운 인간으로 되살리고 싶었다. 독자들이 만난 인물 누구 하나라도 심장이 미지근했다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그동안 연재할 기회를 마련해준 ‘세종매일’ 신문사와 ‘천풍’을 연재하는 동안 과분한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작품을 더 보완하고 미처 게재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여 완성된 작품으로 인사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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