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당시 안동일 변호사는 김재규가 박정환과 함께한 만찬 석상에서 대통령경호실장 차지철과 싸우다가 욱하는 마음에 총질을 했겠거니 생각했다는 거야.” 

김재규의 실제 모습은 그렇게 온화하고 겸손할 수가 없었다. 
안동일 변호사는 속으로 ‘저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살해했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정부장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된 직후 김재규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대요.”
“반체제인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했대면서요?”
“처음에는 ‘김재규가 변명하는 거겠지’하고 생각했겠고마예.”
“한편으로는 김재규의 진술이 당시 반체제 인사로 구성된 사선 변호인단의 조언에 따라 각색된 것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대.”
“그런데 검찰 신문 때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최고 권력을 탐해 자신을 총애한 대통령을 배은망덕하게 살해한 패륜아로 여기기에 너무나 논리가 정연했다고마예.”

“‘김재규 가슴속에 뭔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대.”
“당시 안동일 변호사는 김재규가 우발범이거나 패륜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체제 회복에 나선 확신범 내지 양심범일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해요. 김재규를 몇 번 접견하면서 우발범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대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 사람의 진정성이 느껴지잖아. 꾸며서 말하는 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는 거야.”

“김재규는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10·26 혁명을 일으킨 간접적인 동기가 박정환의 문란한 사생활과 가족, 즉 자식들 문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고마예.”
“김재규는 큰 영애인 박그녀가 관련된 구국여성봉사단의 부정과 행패를 보고 분개했다고해요.”
“이런 일들이 ‘대통령이나 박그녀 자신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조사를 시켰겠지.”

“조사결과 로비나 이권 개입 등 려러 가지 비행이 드러나자 박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했는데 대통령은 ‘정보부에서 이런 일까지 하느냐’면서 몹시 불쾌했다고 해요.”
“박정환은 영부인 육 여사가 돌아간 후 다음부터 자식들을 애지중지하고 철저히 감싸고 돌았다고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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