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박정환은 그 어떤 쾌변을 늘어놓는다고 하여도 낙제(落第)감임엔 틀림이 없다. 

적어도 한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행동거지가 올바라야 한다. 소탈하고 서민적이고 검소함에 대한 박정환의 신화는 그러한 포장이 빚어낸 결과의 하나일 것이다. 

박정환이 사망한지 수십년이 넘었지만, 당시 만들어진 시스템이 상당 수준 한국 사회의 기축으로 여전히 작동한다. 권위주의적 군사정권이 관료제를 통해 경제성장을 하는 체제였다. 그 결과 재벌이 탄생했다. 

효율을 위해 민주주의는 배제되었다. 물론 이후 한국은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 분야의 독재자를 제거했다는 의미가 강하다. 큰 권력자가 없어지자 마치 후삼국시대 호족들처럼 사회 각 영역에서 전두환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독재자들이 등장했다. 

박정환이 죽은 후, 그동안 숨겨져 온 박정환의 문란한 사생활은 김재규·박선호 재판에서 만천하에 드러났으며, 박정환의 여성 편력이 기록으로 알려진 소문도 있다. 작가의 책을 비롯하여, 여러 언론지를 통해서다. 

의문이 들 때면 비슷한 시기의 굴곡을 겪은 인물들을 마주하며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눈감고 기댄 채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박정환은 일본 육사를 다녔고 그들의 군인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 섹스에 관한 한 자신에게나, 부하에게나 매우 관대했는데, 그건 박정환이 ‘사나이 세계에서 관능의 발산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일본적인 섹스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정환은 자신이 독재자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반민주주의 독재자로 여겨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 

때때로 찾아오는 냉혹한 현실, 비어져 나오는 눈물로 복잡 다양한 감정을 품고 다채로운 색으로 반짝이는 조각들이었다. 박정환의 엽색 행각이 차마 밝히기 낯뜨거울 치부가 알려졌다. 우리가 겪었거나 언젠가 마주할 법한 순간들이 한 컷의 장면으로 펼쳐진다. 

어쨌든 박종규가 여사 사망으로 인해 물러나기 전, 그리고 안가를 만들기 전까지 박정환은 승용차로 밤마실을 나서곤 했다. 광인의 항해를 시작한다. ‘광기의 역사’였다. 

탐욕스러운 자. 탈을 쓴 광인. 박정환이 한 밤 중에 JYH 아파트에 찾아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한동 아줌마와 딱 마주쳤다. 

이 아줌마 온 동네에 소문내고 다니다가 중앙정보부 끌려가 11시간 동안 맞았고, 평생 절름발이로 살게 되었다는 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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