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박정환. 그는 쿠데타로 군최고회의장 2년과 대통령 18년 간 절대왕정 독재를 구가했다. 

이어 전두환의 7년, 노태우 5년 이들 3인 군부독재체제는 무려 32년간이었으며, 이들 3인 독재자들은 철저히 우상화·신격화되었다. 

역사적 사건을 차근차근 되돌아보면 독재자에 대한 숭배와 그 후과가 켜켜이 쌓여감을 알 수 있다. 독재자들에는 흐름이 있다. 

이만승은 개인숭배를 이용한 독재의 서막을 열었고, 박정환은 이만승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보다 더한 최악의 독재자로 위력을 과시했으며, 냉혹했고 엄격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집권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집권시기 만큼 국민과 국가가 고통받은 시기는 없었다. 그는 나라를 망친 독재자였다. 

보수진영은 이만승을 독립 후 혼란기에 국가의 틀을 닦은 건국의 아버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독재자 이만승이 권력욕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의 권력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친일 매국노들을 대거 정부요직에 등용하고, 반민특위를 와해시켜 친일파 단죄를 통한 민족정기 확립을 차단한 권력중독의 화신이다.

6.25전쟁을 막지 못하고 국방태세 부실, 전쟁지도력 부재로 수만은 인명과 재산피해 등 국가적 대재난을 초래한 무능한 대통령이었다. 

사사오입개헌과 부정선거를 통한 반민주적 장기독재 끝에 국민에게 내쫓긴 반민주 독재 정치인이었다. 그는 무능과 실정으로 나라를 망쳤으며, 친일파·미국 등의 합작품으로 백범 김구를 암살케 한 장본인이다. 

“김구 선생 암살은 백범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우리 국가 민족의 한 세기를 망쳐버린 사건이었지.” 
“아버지가 보기에 백범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어찌되었을까요?”
“6.25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고, 1950년 5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때 이만승은 대패해 권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백범 암살은 지금껏 제대로 된 조사기록 하나 없어요.”
그들은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 

보수 진영은 8월 15일도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이들은 임시정부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성과를 깎아내리며 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분리하고자 한다.

이만승은 1949년 5월 김약수 국회 부의장을 비롯해 노일환 등 현역의원 23명을 북한 공산당에서 잠입시킨 프락치로 몰아 체포했다. 

이어 6월 6일 경찰을 동원해 헌법기관인 반민특위를 짓밟았다. 그리고 6월 26일 김구가 암살당했다.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암살은 당시의 친일·반공우파 권력 실세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연장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큰 위협이었던 ‘제 1정적’ 백범을 제거하기 위해 꾸민 한 편의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자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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