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개발독재, 압축성장, 군사문화에 시달렸던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오히려 보수 독재체제에 더 순응적이고, 그런 결과 점점 더 소외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현실의 쓰나미는 소설이 세상을 향해 세워둔 둑을 너무도 쉽게 넘어왔어.”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장편소설의 형식으로 작가들이 근현대사를 담는다는 건 간단한 현상이 아니다.

“이명박·박그녀 정권을 거치면서 작가들이 문학과 사회현실의 관계를 다시 인식하게 되며, 1980년대와 다른 방식으로 문학과 정치가 결합한 게 아닌가 싶어.”

“독재자들이란 원래 나약한 존재였고마. 그들이 강했더라면 굳이 독재자가 될 필요 없이 다수의 선택을 받아 지도자로 선출되었을 것이제.”  

무자비한 독재자들도 시작은 미약했다. 
무솔리니는 여러 파시스트 지도자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스탈린은 트로츠키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마오쩌뚱은 1930년대 자신보다 강력한 정적들에 의해 수시로 직위에서 해임됐다. 

김일성은 소련에 의해 북한 인민들이 마지못해 받아들인 지도자였고, 자신보다 훨씬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공산주의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에 버금가는 한국의 대표적 독재 3인방. 이만승·박정환·전두환!
그들은 수많은 반대자의 시체를 밟고 넘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식으로 권력을 잡았다는 것은 다른 이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의미다. 

무엇이 그들의 독재 권력을 유지시켰는가. 한국의 대표적 독재 3인방의 흥망성쇠를 ‘개인숭배’의 관점에서 알 필요가 있다. 아버지는 “살아남은 독재자들”이 두 개의 권력 수단에 의존했다고 말한다. 

‘숭배’와 ‘공포’다. 공포는 쉬이 납득되지만, 숭배는 의아하다. 보통 우스꽝스러운 일탈 행동이나 혐오감을 주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개인숭배가 독재정치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이라고 강조한다.
국민들로부터 숭배를 이끌어 낸, 곧 전제정치가 합의된 것처럼 가장할 수 있던 독재자들이 정적을 물리치고 장기집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 대통령이 던 박정환은 고등학생이 된 1979년까지도 대통령이었으니 내게는 절대군주 같은 존재였다.그의 비극적 죽음을 들었을 때의 두려웠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의 딸 박그녀는 힘겹던 ‘바지 대통령’의 페르소나를 벗고 희극적으로 퇴장했다.

칼 막스가 ‘루이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라고 쓴 대목의 떠오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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