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것은 부담스럽다. 지배적 관념에 도전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고 배척과 고독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지식인의 소명에 부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특별히 유명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아버지의 격려를 믿기 때문이었다. 

지식인이란 권력이나 관습이 만들어 낸 진부한 시각을 거부하고 폭로하는 사람을 말한다. 

‘절반의 진실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어떤 강령이나 당파성에도 순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분명하게 밝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표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표상되지 않는 존재들을 대변하고 정의와 진리를 확산시키는 것이 지식인의 소명임을 역설한다. 

문인협의회도 “언론의 위축 상태가 이제 출판계까지 확대되었다”며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우리 자신의 힘에 의해서만 쟁취될 수 있는 것임을 믿고, 모든 양심적인 지식인, 고난받는 근로자, 시민·학생들과 더불어 끝까지 분투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해직 교수들은 “학문연구와 저술활동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재판정은 변호인단과 피고인의 법률적·학문적 신념과 이론들이 펼쳐지는 장이었다. 

예정된 코스에 따라 기소되고 선고되는 것이었지만, 기록이라도 남기자는 생각으로, 면벽의 한계상황에서 상고이유서를 만들었다.

1대 부패 무능 독재자 이만승 정권이 몰락하고, 2대 독재자 박정환의 5·16쿠데타세력의 국가재건최고위원회가 만들어지자, 항구적 자유와 평화에 대한 기대와 이상이 충만하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자유와 평화에 대한 이상론이 무참히 깨진다. 

독재정치란 무엇인가? 여러 차례 경험했듯이 민주적 절차를 부정하고 통치자의 독단으로 하는 정치다.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그리고 박정환의 유신정권과 전두환의 군사독재가 대표적이다. 

헌법이 힘없이 무너져 헌정질서와 삼권분립은 파괴되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는 눈곱만큼도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생존권마저도 위협받았다.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1인으로부터 나오는 시대였다. 

제왕적 대통령의 절대 권력이 다스리던 억압과 공포의 시대를 독재라 부른다. ‘평생 독재의 꿀을 빨던 세습세력’, 그들이 바로 보수세력이다. 

넓게 본다면 언론·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제약하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조차도 짓밟았던 이명박·박그녀 정권도 독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공권력이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데 오남용한 시대도 독재이자 반민주다.

단순무지한 인식에 놀랄 일은, 보수세력과 맥이 닿아있는 보수언론과 그 정치세력이 여전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해온,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독재라는 진단의 빗나간 화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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