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죽어서도 이들은 시신조차 가족의 품으로 가지 못하고 정부 당국에 의해 경기도 벽제 화장터에서 태워지는 한을 안고 갔다.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은 많은 점에서 지적돼 왔다. 인혁당 사건의 증거로 채택된 것은 고문과 강압에 의해 작성된 피의자들의 진술서뿐이었다. 

또한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피의자들은 가족은 물론 변호사들조차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사건을 완전히 은폐하기 위해 피의자들의 법정 진술까지 조작했으며, 가족들이 보관한 항소이유서와 공소장까지 압수해 사건의 증거를 모두 인멸하려고 했다.

아버지의 근본은 자유정신이다. 아버지의 주제는 어떤 이념이나 시대의 흐름에 앞서서 인간을, 인간다움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긴다. 그 자유로운 정신과 인간다움이 그의 학문과 삶의 지향이다. 

애급에서 노예로 살던 시대가 훨씬 나았다고 끝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자들처럼, 차라리 독재시대가 나았고 일제강점기 때가 고마웠다는 이들이 언론과 거리를 누빈다. 

“인간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아이가.”

봉준이의 내뱉음이었다. 그의 학창시절 유신독재는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청운의 꿈을 꾸고 대학에 온 이상주의 성향의 젊은이에게 정치현실은 적대와 거부의 대상이었다. 

10대들이 군 출신 교관에게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배우고 대학 캠퍼스에는 형사와 경찰들이 진을 치던 시대였다. 학교생활은 암울했고,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돌아보면, 현실주의적 관점과 이상주의적 관점을 오가는 지적 밸런싱과 리밸런싱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노랫말 가사를 트집잡고 맥락없이 영화를 가위질해도, 무고한 국민들이 죽음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던 시대가 그리울 수도 있다니.”

“지금은 창조적 개인의 시대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우리는 낡은 도그마나 이데올로기로부터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갖가지 명분으로 편가르는 우상을 지금도 받들고 담론을 외면하는 인간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시대착오적인 국가주의자들이 설치고, 어린아이들까지도 시장원리로 줄을 세운다. 참으로 유연하고 자유로운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따뜻한 인간성, 자유로운 정신이 그립구나.”  

1977년 11월 이른 아침 아버지는 연행되어 갔다. 나흘 후 ‘니체 사상집’을 펴낸 출판사 대표가 연행되어 갔다. 저자와 출판사 발행인에 대한 수사는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는 “일방적이고 왜곡된 시각”만을 강요받던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국제적 시야를 넓혀준 용기 있고 양식 있는 지식인을 구속하는 것은 “양심적인 지식인에 대한 탄압”이라고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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