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이렇게 되면, ‘독재를 했지만, 그래도 경제는 잘하지 않았느냐’ 식의 ‘박정환 신화’는 설 땅을 잃게 된다.
 
문제는 박정환시대의 ‘경제총점’을 똑 떨어지게 내밀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정환을 바라보는 이의 색깔에 따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크기가 확연하게 달리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순전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경제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적 사안이어서, 경제 총점을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박정환 신화의 실체는, ‘지도자의 역량과 대중의 역량을 혼동한 결과’다. 또, 시운까지 딱 들어맞았던 것이 주효한 것이다.

“나는 그가 좋은 사람인줄 알았다. 한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믿는 이상을 버려야 하는가? 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의 화신이었다”고 아버지는 회고했다.

또한 여순사건 당시의 왔다리 갔다리 행각을 빼놓더라도, 박정환 18년만을 두고 평가해도 박정환의 죄악은 천지를 뒤덮고도 남는다.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비판 성명을 준비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이를 취소해야 했다. 박정환 정권 전반기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후반기엔 긴급조치로 사람들을 조졌다.

물론 긴급조치 시절에도 급하면 국가보 안법, 반공법이 미친 칼춤을 추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혁당 사건이다.

취약한 군사독재정권의 한계를 감추기 위해서, 저항하는 민주화세력을 빨간색으로 채색시켜 국가 전복을 기도하는 폭력집단으로 조작하여, 일관되게 사형을 선고한 사건! 박정환이 이데올로기 사슬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억울하게 몰아가지고, 남의 인생 망치고, 그 집 안을 풍비박산 시킨 경우가 어디 한 둘인가?

박정환 정권은 국가테러리즘의 전형이었다. 제일 웃긴 것은 박정환 스스로 깡패 보다 더한 짓을 했으면서 깡패소탕 운운한 것이다. 기가 찰 일이다.

반공법 제4조의 상투적, 견강부회적, 무차별적, 모략적 적용이야말로 우리 사 회의 사상적, 정신적 성장과 발전을 빼앗아 온 최대의 질곡이며, 우리 민중으로 부터 ‘말의자유’를 빼앗아 숨 막히는 암흑과 침묵의 문화를 보급함으로써 민주주 의를 압살하고, 부패특권의 압제권력을 유지해온 최대의 억압의 무기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머리끝으로부터 발끝까지 치 떨리는 분노로 규탄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개성의 존중,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온 몸으로 주창한다! 그야말로 박정환 정권은 김종필의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인권유린의 국조화를 자행하여 한국사회 전체를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반민주적 독소로 가득찬 사회로 만든 원흉이다.”

아버지는 박정환에게 독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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