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지금의 보수 A당의 전신이자 뿌리는 박정환 유신독재의 00당, 전두환 군사독재의 00당이며, 차떼기로 상징되는 00당이다. 그들의 뿌리는 친일파 세력이고, 군사독재세력이며, 영남패권세력이다.

그들의 지향점은 수출주도형 성장제일주의자이며, 독점재벌, 대기업 편향이고, 사상·이념은 보수 일변도이다. 그들의 통일관은 분단 고착화이고 반북대결주의요, 시대착오적인 흡수통일이다.

분단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유엔에 가입한 엄연한 국가인 북한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며, 북한정권을 괴뢰정권으로 국민을 혹세무민하고, 반공, 멸공, 반북이데올로기를 반세기 동안 주입, 세뇌시켜 왔다.

그들 보수는 안보를 빌미로 자유당 부패무능 이만승 독재정권, 화공당 박정환 유신 군부독재 정권, 정민당 전두환 군부테러정권으로 철면피한 공포·독재정권이었다.

물론 박정환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경제개발 업적을 지나치게 과대하면서 불가피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 10% 안팎의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모두 박정환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값싼 양질의 노동력 이 있었고, 집권 초반기 방위비 부담이 크지 않았으며,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 쳐 미국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린 데 따라, 반사이익을 볼 수 있었다는 객관적인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

박정환이 잘해서 경제가 잘 됐다는 것은 지도자의 역량과 국민의 역량을 혼동하는 것이다. 국민의 역량과 시대적 요구에 의해 지도자의 역량이 발휘된 것으로 봐야 한다.

흔히 필리핀 마르코스 정권의 예를 들어 박정환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은 필리핀과 달리 우수한 노동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토지개혁을 단행했다는 좋은 바탕을 깔고 있었다.

여기에 국제적인 역학 구도로 중동특수를 누릴 수 있었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는데 유리했다는 외부 여건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1960, 70년대에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과에서 박정환의 공은 제한적이다.

박정환 정권 경제정책의 상징인 ‘경제개발계획’이 실상 5·16쿠데타 이전인 2공화국 시절에 세워졌다는 점도, 박정환 개인의 공을 일정하게 제한하는 대목 이다.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이를 추진할 경제기획원 설립 구상도 2공화국때 이미 마련돼 있었다.

박정환 시대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은 정경 유착, 각 부분의 불균형성장, 관치 금융 등 어두운 구석을 배경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60, 70년대의 경제적 성과에서 차지하는 박정환의 기여도와 함께, 또 하나의 커다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양적성장이 세계 경제사적으로 괄목할 만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고려하면 총점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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