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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天風11 보수·친일·유신단죄 4소설가 김재찬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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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0  13: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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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체제는 전두환·노태우 정권으로 이어져 32년간의 군사정권을 기록했고, 매우 좋지 않은 정치문화를 남겼다. 비타협적인 저항과 불복종, 그리고 분열적인 문화가 그것이다. 이는 민주화와 공동체발전에 필수적인 협력과 통합의 토양을 말살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런 정치문화가 10.26사건 이후 세대교체 를 통해서도 질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부는 아버지의 명성을 고려해 추방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수시로 정보요원을 보내 감시했다.

민주주의, 정의, 평등, 인권, 인명, 병역과 납세 등 국민의무, 실정법에 대한 무시, 배금주의, 지역차별, 등 강력한 지역주의, 부정부패, 정경유착, 반노동자, 개인숭배성향 등 한국보수의 부정적 특성도 이때 확립되었다.

이런 보수이념과 부정관이 세운 민주공화당을 중심으로 보수 세력이 결집하였으며, 그 이후에 00당, 한00당, 새00당 등의 보수 우익세력의 정치적 구심점이 되었다.

“그들은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외치면서 남로당 군시총책이었던 박정환을 빨갱이라고 하지 않는지 그게 불가사의하다. 김대중이 어떤 빨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박정환은 남로당에서 진짜 빨갱이였기에 사형선고까지 받았고, 백선엽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줄곧 감시해오던 군부 독재정권은 “아직도 극단적 사상을 갖고 있다”며, 아버지를 가택연금을 시켰다.

박정환의 공과 중에서 그의 직접적 정치적 업적보다, 그가 뿌린 경제제일 우익 보수 이념과 장장 18년에 이르는 독재기간에 경제개발주의자, 친재벌, 친일, 친미, 독재, 반공주의, 국가사회주의, 군국주의 성향 등 오늘날 한국보수의 정치적 특성을 대부분 확립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환! 국가 규모 경제에 전혀 경험이 없었던 문외한이었던 사람이었다. 정책을 제대로 정확하게 결정하지 못했던 사례가 많았다.

초기에는 그 많은 원조와 경제개발 정책 조언을 미국으로부터 받고도, 1962년 증권시장이 등 어려움을 경험한다. 트레이저 보고서에 따르면 박정환이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을 잘 따르지 않았다. 하루바삐 남한의 경제를 개발시켜야 했던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자, 어쩔 수 없이 박정환은 미국 경제 전문가 조언대로 따른다.

이제야 경제에 밝았던 미국 경제 전문가들의 말에 따른 박정환의 공이 컸다.

하여간 그 공 덕분에 커미션 및 정치자금 스위스 비밀계좌 생기고, 아직까지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돈이 굴러다니고 있다. 정말 경제개발에 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는 혁명적이었다. 그것이 아버지가 더욱 위대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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