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내 생애 중 가장 많은 글, 절정기만큼 근사한 니체를 써낸 때였지…”

니체는 아버지를 의연하게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니체를 연구하면 어떤데요?”
“그럴때면 난 훨훨 날고, 글을 쓸 때면 난 불꽃이 튀었어.”
“그래요. 아버지께 처음부터 끝까지 빠지지 않는 것은 니체예요.”
“글을 쓸 때면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서 꺼내 벽에 대고 던졌다가 튕겨 나오면 다시 받는다.”

지옥 같은 곳, 스스로를 괴롭힐 만한 건수가 널려 있는 연구소에 가지 않으면, 아버지는 우울해지고 글 쓸 기력마저 없어진다고 고백했다.

“거기 나가 있으면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게 돼.”
“왜요?”
“거기 나가있으면 내가 너무도 멍청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그럼, 글줄이 니체 덕택에 계속 흘러나오는 거예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멋있게 들리는 건 내가 도박하듯 글을 쓰기 때문이야.”

“저는 신중해요.”
“신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은 연구하고, 가르치고, 그리곤 망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 가까이서 삶을 돌아본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난 어느 정도는 쿨하고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난 괴상하고 거친 한평생을 살았고, 삶의 대부분은 끔찍했으며, 한마디로 고역이었다.

하지만 난 개똥같은 인생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꾸역꾸역 뚫고 나왔고,그게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이다. 나 또한 철학을 두루 공부했고 진보적인 정신을 작업에 구현하려했다.

노동과 영혼에 대한 관심, 이상주의자이자, 실용주의자로서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도 통했다. 이 임계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했다. 재능이면서, 결심이자 단호한 의지였다.

“검은 것은 검고, 흰 것은 희며, 사슴은 말이 아니라 사슴이다.”

이 말 속엔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가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고 역사학자로서,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참상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면 날마다 깨어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