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1980년대 초, 어느 가수가 애절하게 읊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고 있다.

가사의 한 대목처럼 우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오래전 시월에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경구를 체현한 어느 독재자의 최후를…

그리고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전투경찰의 군홧발에 짓밟힌 대학의 캠퍼스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 1985년 시월의 마지막 밤, 어느 대학의 건물에 갇혀 있던 100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공산혁명분자’라는 딱지를 붙여 연행한, 1986년 시월의 마지막 밤을…

그때와는 한참 달랐으면 하거늘, 공작정치가 난무하고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음침한 분위기, 시간이 필요한 때에 여전히 철권을 휘두르려는 심사가 엿보이기에 역사의 정체를 넘어 역류를 느끼게 되는 요즘의 현실도 누군가가 잘 기억하리라…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자발적 복종의 뿌리를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이성계에서 찾았다. 나라를 지배할 사상적 무기로 유교사상을 택하면서, 봉건적 유교질서가 우리 삶에 고착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20세기 들어와 조선 500을 관통한 봉건질서가 무너졌지만, 일제 35년, 해방 후 친일파 득세, 군부 독재, 외환위기, 자본(재벌) 독재를 거치며 개인들은 기회주의가 가장 현명한 삶의 해법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민중이 권력을 갖고 통치하는 진짜 민주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어.” 
“다수의 지배를 선거에서 많은 표를 획득한 정치인의 교묘히…”
“사회주의 국가 역시, 노동계급의 당파성을 주장하는 관료의 지배를 프롤레타리군사정부 시절, 관료집단은 권력의 하수인이었다. 관료집단은 절대 권력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키웠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관료집단의 힘은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꼴보수 세력은 지금도 권력 독점과 기득권 수호를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국가 폭력을 정략적으로 방조하거나 두둔하고 있다.

“집권세력은 이제야 자기들이 한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위기감 속에 부인하고 역공을 취하느라 정신이 없제.”
“사지(死地)에 갇힌 것이야.”
“여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제.”
“이게 한국식 사생결단 정치의 한 단면이야.”
“…”
“마감 잘하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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