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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선교사(宣敎師)
세종매일  |  ygnew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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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0  09: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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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한국에 처음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약 135년 전 쯤 된다.

서 선교사가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때 서양 사람을 아귀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럴싸하다. 얼굴을 보면 파란 눈에 툭 튀어나온 코, 노랑머리, 장대 같이 큰 키는 우리의 신체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온 초대 선교사들은 다른 나라에 파송된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하기 위에 파견된 분들로 교육, 의료사업에도 큰 업적을 남겼던 것이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선교의 역사를 본다면 중세의 프란체스코회 와 도미니크수도회 수도사들이 선교활동에 나섰고, 16세기에 와서는 예수회 수도사들의 활동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과 같은 선교활동의 기초를 닦은 사람은 영국에서 침례 전도회를 조직(1792)한 W. 캐리 목사님이다.

그는 1793년에 인도 선교사로 자원하였고, 홀몸으로 인도에 들어가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아 영국에서는 런던 전도회(1795년)가, 미국에서는 미국 해외 전도회(1810년)가 창설돼 세계 각처에서 활발한 선교활동이 전개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조선은 개항(開港)이후 영국국교회 소속의 토마스 선교사가 평양 대동강 변에서 순교한 적이 있었고, 1884년 갑신정변 무렵 알렌 의료 선교사가 들어와 고종황제의 어의 노릇을 하는 한편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활동을 하였는데, 세브란스의대 설립자 ‘더글러스 에비 슨’,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턴’, 평양 선교의 개척자 ‘윌리엄 홀’, 한국 최초 맹인학교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세운 ‘로제타홀’, 숭실대학교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 대한매일신보 설립자 ‘어니스트 베델’, 외교적으로 한국 독립을 도와준 ‘호머 헐버트’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이룩한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특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언더우드는 1885년도에 아펜젤러 와 함께 제물포항에 발을 내 딛는다.

그에게 한국 선교의 개척자라는 대명사가 붙은 이유는, 선교 초기 그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그는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초대 성경 번역 위원장을 맡은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위원장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였으며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조선기독교대학(세브란스의대와 합병 후 연세대학교로 개명)을 설립해서 초대학장을 맡으며 대학 교육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하였다.

그의 비문에는“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는 말씀으로 우리들을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선교회를 창설하고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한국의 교육발전을 위해 헌신하였다.

1902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회의에 참석차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군산 앞 바다에서 충돌 사고로 인하여, 여학생이 익사(溺死) 직전에 놓이자 그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안타깝게도 깊은 바다 속에 수장되고 말았다.

 서울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있는 묘지는 비록 가묘라고는 하지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왔습니다.”라는 비문(碑文) 때문에 요즘도 그를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이처럼 척박하기만 했던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외국인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고 지금까지 잘이어 져 오면서 한국복음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고 있다.

그들이 조선 땅에 뿌린 씨앗 덕분에 오늘에 이르러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선교 강국이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지난 8일 조치원장로교회(담임 진영선목사)의 2층 본당에서는 제15기 캄보디아 해외 단기 선교단 파송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선교의 양면성”이란 담임목사님의 감동적인 설교에 이어 주제곡(主題曲)인 선교사(아픔 많은 세상에서...)의 노래를 반주에 맞춰 부르다가 모든 대원들이 감격에 겨웠는지 한 구절 밖에 따라 부르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흐느낌의 소리는 성령이 함께하는 감동의 드라마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흘 후에 선교대원 17명은 캄보디아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불교의 나라답게 불상의 흔적이 지천(至賤)하고 영적으로 척박하기만 한 캄보디아는 한국의 1960년대 말(末) 새마을 사업이 진행되기 전(前)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변화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자라온 우리들에게는 그 땅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다만 변덕스러운 날씨와 시차적응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것은 당연히 영적 싸움이려니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던 같다.

캄보디아 “끄레앙 사랑교회” 예배당을 가득 메운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 할 수 있었고,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그 나라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친 후 선교대원들이 준비한 간식을 들고 돌아가는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은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노방전도 때는 마을 주민들에게 전도 물품을 나누어주며 “쁘레아 예수~쓰럴란 네악”(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을 외쳤던 그 모습을 지금 생각하면 탁월한 선택을 했다는 자부심이 든다.

끄레앙 사랑교회에서의 어린이 사역과 노방전도 8박 9일간의 일정이 어느덧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세상에 거저는 없다고 한다. 즉,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금년도 캄보디아의 땅에 조치원 장로교회에서 뿌린 씨앗이 부활의 꽃으로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금번 단기 선교를 은혜로이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선교 대원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선교 후원금과 물품(학용품, 의약품, 의류, 장난감)으로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끝으로 조치원장로교회 선교대원님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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