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한데 쉬어 간들 어떠하리.”

이 시조는 황진이를 대표하는 시조다.

벽계수라는 왕족의 건달이 황진이를 사모하여 접근을 하였는데 황진이 또한 그 사나이를 은근히 유혹할 때 지은 시조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기생이라면 단연 황진이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 이었는데 그녀가 어느 따뜻한 봄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는데 지나가던 황진사의 아들이 진현금의 미모에 반해 정을 통하여 낳은 자식이 서녀(庶女)인 황진이라고 한다.

절세미인 황진이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지만 양반집 딸 못지않게 갖가지 교육을 잘 받았고 학문과 예의범절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8세 때에 천자문을 통달할 정도로 총기가 있어 10세 때에 벌써 한시(漢詩)를 짓고 고전을 읽었다고 한다.

기적에 입문 후에는 서화(書畵)와 가야금의 기량이 출중하여 남정네들에게는 신화와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기생의 길을 가게 된 동기는 이러하다.

15세 때 그 동네에서 황진이를 연모 하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속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짝사랑으로 속앓이를 하다가 그만 상사병이 들어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 청년의 어미가 황진이의 어머니를 찾아와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게 해주면 자식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소연 하였지만 결국은 거절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청년은 못내 한을 품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황진이는 어느 날 집에서 글을 읽고 있는데 그 집 앞을 지나가던 상여가 문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상여의 요령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을 알아본 즉 자기를 짝사랑하다 죽은 청년이 한이 맺혀 못가는 것을 알고 황진이는 소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자신의 치마를 벗어 관에 덮어주고, 아주 슬프고 애절하게 곡을 해주니, 그제서야 상여가 움직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황진이는 자기를 연모하는 남정네들이 많은 것을 알고 그들에게 죽음을 몰아다 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기생이 될 것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자신의 자유분방한 성격대로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그 당시 수도였던 개경의 많은 선비와 학자들과 정을 통하고 교제했던 것이다.

황진이와 가깝게 교제한 사람은 많으나 대표적인 인물이 벽계수(碧溪水)와 지족암자에서 30년을 수도한 지족선사 그리고 화담 서경덕(徐敬德)이었다.

먼저, 황진이는 벽계수를 넘어뜨린 후, 그 여세를 몰아 이번에는 지족선사를 찾아간다.

그녀는 지족선사에게 넙죽 절을 하며 제자로써 수도하기를 청하였으나 선사는 여자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였다. 황진이는 할 수 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황진이는 아니었다.

두 번째 찾을 때는 꾀를 내어 변복(變服)을 하였다.

그녀는 소복단장 청춘과부의 복색을 하고 지족암자를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는 죽은 남편을 위하여 백일 불공을 드리려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황진이는 지족선사가 있는 바로 옆방에 거처를 정해 놓고 매일 밤 축문을 지어서 아주 청아한 목청으로 불공을 올린다.

처음에는 아랑곳 아니 하던 선사도 날마다 은은한 불빛에 비추는 농익은 여인의 실루엣과 밤만 되면 임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애끓는 여인의 몸부림에 지족선사는 어찔할 수 없이 욕망이 솟구쳐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수법에 결국 지족선사는 파계되고 말았으니 아! 어이할꼬! 20년을 수도하고 10년을 공부한 지족선사였기에 그때부터 우리 속담에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남자들은 황진이가 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넋을 잃을 정도로 그 아름다운 자태와 미모에 반해서 오금을 못 폈다는데, 오직 서경덕 한 사람만은 한밤중 단둘이 동침을 하면서도 사나이의 지조를 지켰다고 한다.

화담 서경덕(1489~1546)은 당시 과거에 급제하고도 간신(奸臣)들의 득세와 부패한 조정에 염증을 느껴 벼슬을 마다하고 일생을 학문 정진에만 힘썼던 은둔 거사이자 대학자였다.

집은 극히 가난하여 며칠 동안 굶주려도 태연자약하였으며 오로지 도학에만 전념하며 제자들의 수업에 온 정열을 쏟았다. 평생을 산속에 은거하며 살았고 세상에 대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듯 했지만 정치가 도를 넘어 타락하거나 정도에 어긋나면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임금께 상소를 올려 잘 못하는 정책을 비판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경덕이 바로 송도 부근의 성거산(聖居山)에 은둔하고 있을 때다.

자연히 그의 인물됨이 인근 개성에 자자하게 소문이 났고 그 소문을 황진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지족선사에 이어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도전하기로 한다. 그래서 기생으로써 많은 선비들에게 썼던 수법을 그대로 서경덕에게도 쓰기로 하였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하얀 속치마 저고리만 입고 우산도 없이 장맛비를 흠뻑 맞은 상태로 서경덕을 찾아간다. 비에 젖은 하얀 비단 속옷은 알몸에 밀착되어 가뜩이나 요염한 그녀의 몸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런 차림으로 계속 비를 맞으며 서경덕이 은거하고 있던 초당(草堂)으로 들어갔다.

물론 서경덕이 혼자 기거하는 집이다. 조용히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은 뜻밖의 절세미인을 보자 반갑게 맞으면서 비에 젖은 몸을 말려야 한다며 아예 그녀의 옷을 벗겨 준다. 그리곤 알몸이 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직접 물기를 닦아주는 서경덕을 보고는 오히려 쾌재를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황진이의 몸에서 물기를 다 닦아낸 서경덕은 마른 이부자리까지 펴주는 것이 아닌가!
당초의 계략대로 잘 될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남은 한 장의 속옷마저 벗어 던지고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을 보여 주지만 서경덕은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오히려 이불을 덮어주고 몸을 말리라고 하고는 다시 꼿꼿한 자세로 앉아 글 읽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존심이 상하여, 오기가 발동한 그녀는 이불을 걷어치우면서 더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밤이 깊어지자 서경덕이 옷을 벗고 황진이 옆에 눕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사내의 본색을 드러내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옆에 눕자마자 가볍게 코까지 골면서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새벽에 눈을 뜬 후 혹시나 남자로서의 제구실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의아해하면서 서경덕의 몸을 만져 보고는 깜짝 놀란다.

정말 듣던 대로 대단한 위인이구나. 그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대충 말린 옷을 입고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마음이 안정돼 성거산을 다시 찾는다.

그 때와는 달리 요조숙녀처럼 정장을 차려입고 음식을 장만하여 서경덕을 찾았다. 역시 글을 읽고 있던 서경덕이 이번에도 반갑게 맞았고 방 안에 들어선 황진이는 서경덕에게 큰절을 올리며 제자로 삼아 달라는 뜻을 밝힌다.

그 뒤엔 사제지간으로 황진이가 평생을 흠모하며 지냈다고 하니. 여자치고는 뜻이 깊고 기개가 높아 사내 대장부에 못지않던 황진이였지만 서경덕의 큰 기개(氣槪)앞에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선생님은 개성의 3절이시라고 찬탄을 하니 서경덕은 무엇이 3절이냐고 되묻는다.

”그 첫째가 서경덕이요, 둘째는 황진이, 그리고 셋째는 개성의 박연 폭포”라고 답하였다.

요즘, 자신의 성폭력 피해사실을 고백함으로써 성범죄의 심각성을 폭로하기 위한 #미투운동(나도 당했다)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018년 1월말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되어 문화 예술계 뿐만 아니라 정치, 학교, 방송 심지어 종교계까지 자행돼 왔다니 정말로 참담하기만 하다.

영화감독의 탈을 쓰고 촬영현장 여성 스태프(staff)들을 호텔로 부르고 “배역을 주겠다”며 성폭행을 일삼던 놈들!

교수의 탈을 쓰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학생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인권과 꿈을 철저히 짓밟은 놈들! 이 나라 최고의 시인(詩人)이라는 탈을 쓰고 늑대 같은 수작을 부리던 놈들!

연극 연출가의 탈을 쓰고 개 같은 짓거리를 하던 놈!

도백의 탈을 쓰고 국민들을 잔인하게 우롱하던 놈들이 아니었던가!

자기가 무슨 영웅이나 된 것처럼 군림하는 꼴들을 보노라면 정말 역겹기만 하다.

이런 난세에는 화담 서경덕(徐敬德)처럼 인내하고 절제(節制)할 줄 아는 영웅들이 꼭 필요한 시대인가 보다.

여보시오, 그렇다고 양의 탈을 쓴 주제에 영웅 행세는 가당치 않소.

당신에게도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란 꼬리표가 달릴지도 모르니 명심하란 말이요! 명심하시오!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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