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교사실천 대회로 모였다. 일대일 결연, 초진 거절 편지 보내기, 수업평가 받기… 힘겨운 실천을 자청했다. 책임을 맡은 봉준이는 수업과 이 일을 병행할 수 없었다.

결국 퇴직의 기로에 섰다. 퇴직에 몸을 던지려니 공포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길밖에 없었다.

자기 직업도 뚜렷이 없던 아내는 ‘산 한 모퉁이 돌아야 그 다음이 보이는 법이에요’라며 봉준이 선택에 동의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선택이 맞는지. 버려서 아름다운 것이 단풍만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렇게 그의 선택을 쉬 결정하기엔 좀 더 많은 시련이 뒤따랐다.

동료 교사 중에는 해직과 복직 과정을 거치며 단단한 사학의 힘을 절감했다.

동료교사는 수억원을 유용한 재단비리를 고발했지만, 교육청은 오히려 민원을 제기한 교사의 신원을 학교 쪽에 노출시켜 교사는 직위해제 됐고, 2년 후 해임됐다.

학생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해 학생과 학부모 등 80여명이 함께 교육청에 40여 가지 민원을 제기하고 감사요청을 했다.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감사 요청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해결되리라 생각 했지만, 교육청은 감사조차 나오지 않았고 결과는 처참했다.

부정의 당사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제보한 사람들은 쫓겨났다.

이 학교는 역사가 20여년 된 곳으로 명문대 진학률이 서울에서 상위권에 들었으나, 그에 비해 시설 투자에 대한 인색함과 교사에 대한 인권유린은 매우 심각했다. 건물이 완공 되고 한편엔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공부시킬 수 있는 교실을 대규모로 설치했다.

오후 6시가 되자 교복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기념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기숙동에 가방을 내려놓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고2는 2시 이후 출입금지! 전부 취침할 것! 심야자습실 경고문이었다.

고 3강의실에 들어갔다. 책과 공책을 펴놓고 올망촐망 눈빛들이 반짝이었다.
전봉준은 물었다.

“인재숙에서 가장 힘든 게 뭔가예?”
“참, 잠요. 잠이 모자라요.”
“그리 힘들면 어쩌노.”
“인제 괜찮아요.”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적응이 돼서…”

시간표는 엄격했다. 밤 11시까지 언어, 수학, 영어 수업을 듣는다.

의무적으로 수업을 듣고 일요일은 자율학습이다. 과목별 과락이 다섯 번 나오거나 벌점이 30점을 넘으면 짐을 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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