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만 기런 문화가 남아 있는게 아이었제.”
“그럼?”
“월요일마다 열리는 교무회의는 교장, 교감선생님의 지시사항만 전달하는 자리고, 교사들은 입도 뻥긋 못하는 분위기였제.”

1996년 3월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학교라는 의미의 국민학교가 일제히 초등학교로 바뀌며 일제 잔재 청산의 물꼬가 터진 듯했다. 그러나 해방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일제가 남긴 문화는 학교 안에 깊이 뿌리박혀있다.

아버지는 일제가 우리 교육에 남긴 가장 강력한 영향으로 국가 주도적인 교육체제를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가, 교육청, 학교, 교사, 학생으로 이어지는 비민주적인 수직적 관계가 교육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일제의 교육제도나 시스템은 일본보다 우리 안에 더 많이 남아있고, 등교시 복장검사와 소지품검사, 애국조회 등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모습 자체가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교육과 닮아 있다’고 하셨어.”

“어떤 면에서 말이가?”

“‘수업시작 전 반장의 구령에 맞춰 교사와 학생이 인사하고, 종치면 운동장에 집합해 훈화를 듣는 일사분란 한 모습과 엄격한 학교규율은 원래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일왕이 이끄는 신민으로 쉽게 통제하기 위해 일제에서 배태된 것’이라고.”
 
아버지는 ‘일제가 세속종교로 서 학교를 효율적으로 이용했다’고 설명한다.
특별한 종교가 없는 일본은 기독교의 의식처럼 아주 정교한 규율을 만들었고, 이런 종교적인 ‘리추얼(학교교육)이 반복되면서 일왕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라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는 해방 후에도 형식은 그대로 둔 채 교육의 내용만 신민에서 국민 만들기로 변했을 뿐 이라고 했다. 해방 이후 중앙집권적 교육과정도, 사범대 중심의 교원 양성도 일제시대 그대로였다.

국가가 교육과정을 만들고, 각 학교와 교사들이 그대로 따라가는 국가체제 교육과정을 실시하는 곳은 한국과 일본, 북한, 중국 등 극히 일부 국가뿐이다.

국가교육에 복무하는 교사가 갖춰야 할 태도나 요건들이 일반적인 교양인과 다르다고 생각해서 사관학교 같은 체제를 통해 교사를 길러야한다고 생각했던 사범학교 중심의 교원 양성체제의 바탕도 일제식민지 시기에 마련된 것이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