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으로 가득했어.”
“그람, 풍금 잘 치고 노래 잘하는 생글생글 여선생님은 무얼 하고 계실꼬, 풍금도 심심할끼고마…”

선생님 손끝에서 나오는 풍금소리는 시골 꼬마들을 얼마나 매료했던가, 목이 마르던 운동장을 지나는 선율을 따라가면 ‘순이’가 앉아있던 맨 끝 양철지붕 교실이 손에 잡힐 듯 했다.

거기 순이의 머리카락을 더 나부끼게 하던 풍금 소리가 있었다. 천상의 소리인…

여름 방학 숙제는 잡초를 뽑아 말려서 가져오기, 말린 잡초는 퇴비로 만들어져 거름으로 사용되었다. 방학 때도 번갈아가며 학교에 가야했다. 꽃밭과 텃밭에 물을 주고 풀을 뽑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배추밭 위로 날아다니던 수많은 배추흰나비. 배추 잎을 갉아먹는 애벌레를 잡아야 하는 일이 끔찍해서 나비가 싫었다. 하지만 파란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나비 떼들의 모습. 언제부터인가 징그럽게만 여겼던 애벌레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봉준이는 나비 한 마리, 개미 한 마리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잡아서 이리저리 분석해 봐야 직성이 풀리고, 평소 잡을 수 없었던 도마뱀, 새들을 기절시켜 가면서까지 궁금증을 해소 했다.

한때에는 공원관리자나 동식물 연구가가 되고 싶어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사범대학 생물교육학과를 졸업했고, 운동권인 그가 우여곡절 끝에 교사가 된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탱자나무 울타리와 흰나비 떼가 떠올랐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기구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집에 가면 농사나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친구들은 해가 질 때까지 학교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씨를 뿌려서 땀 흘려 가꾼 것들을 거두면서 자연법칙을 몸으로 알게 한 학교. 그곳에서 세상 모든 일에는 씨 뿌리고 가꾸는 과정이 없으면 수확도 없다는 것을 저절로 깨달았다.

시골 어릴 적 삶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도회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꽃마을 이야기, 호박은 한 구덩이에 여럿을 심어야 우애 있고 실하게 자란다는 호박농사 이야기, 복숭아를 좋아하는 손주를 위해 마당 한가운데 복숭아나무를 심은 할아버지 이야기,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수십 년 지났어도 산골마을의 소년에게는 은빛소년의 눈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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