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전 국민 기생충 감염률이 80%를 넘나들었제. 거리에서 약을 팔던 약장수들이 구경하던 아이 한 명을 무작위로 불러내 회충약을 먹이면…”

“먹이면…”

“그 아이 항문에서 회충이 떼거지로 배출되고 했제.”
“봉준아, 네 말이 맞아. 끔찍해.”
“같은 반 아이들 중 상당수가 기생충에 걸려 약을 먹어야 했지만, 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양성으로 나온 적이 없었제.”

“놀랍네.”
“그때는 다행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겐 장차 기생충도 가르치는 생물선생이 될 자질이 이었던 모양이였고마.”

“참, 재미있어.”
“고양이 앞에 선 쥐가 도망칠 생각을 못한 채 몸을 떨고 있는 것처럼, 감히 내게는 들어올 생각을 못했으니까.”
 
지금 그 시절을 떠 올리니 눈물이 핑 돌았다.

더 많이 소중한 것들을 나누어 주고 싶었지만, 때로는 육신의 피곤함 때문에, 또 때로는 결혼 후 맺어진 새로운 가족관계에서 오는 갖가지 스트레스 때문에, 선생님에게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을 잘 따랐다. 칠곡에서 6년간 다녔던 초등학교는 시설이 아주 열악했다. 교실이 모자라서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교실을 사용하는 이부제 수업을 받기도 했고, 책·걸상이 없어 교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공부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친 정말 마음에 드는 학교였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학교는 봄에는 하얀 꽃, 여름에는 가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잎, 그리고 겨울에는 노란 탱자의 향긋한 냄새가 반겼다. 학교 텃밭에서 딴 고추와 상추에 쌈장을 찍어 먹었던 점심에 그 밥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선생님은 교실 밖에 주렁주렁 달려 있던 수세미를 따서 집에서 설거지할 때 쓰라고 나누어 주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한참 지나면 학교가 궁금했제. 운동장은 얼마나 심심할까, 플라타너스는 키가 얼마나 자랐을꼬. 칠판이며 의자들은 또 얼마나 지루할끼가. 교실 한쪽을 지키던 풍금도 그리워지곤 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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