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신축교사를 짓고는 일본식 기와를 얹은 옛날 교사(校舍)를 도서관으로 꾸며 놓았다.

서고라고 해봐야 큰 교실 두칸 정도였지만 그곳은 봉준이에게 책의 바다였다.

교육을 망치는 두 가지 착각이 있다.

뭔가 도모하다보면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결국은 맺고야 마는 지도자와 추종자 관계에서 일어나는 착각이다. 자신의 영향력을 중히 여기지 않는 지도자는 역할을 한정하면서 사회갈등을 방치한다.

그리하면 약자들이 큰 해를 입는다. 강자에 대항할 조직재화마저 갖고 있지 못한 약자들은 지도자, 특히 교장 같은 지도자의 개입에, 강자와의 싸움에서 살아나지 못한다.

지도자의 영향력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지도자의 영향력은 권한과 권위에 바탕을 둔다.
권한은 지위가 준 힘이고, 권위는 추종자들의 동기가 준 힘이다. 권한을 지혜롭게 행사해 권위를 키우고, 권위에 바탕을 둬 권한을 행사해야 영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지도자는 권한과 권위를 갖고 있기에 타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지도자를 자기보다 어른으로 여기는 추종자의 착각이다.

지도자를 따라다녀야 할 사람으로 만 보기에 갖는 착각이다.
지도자를 당장 바꿀 계기와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비판과 반대만으로는 지도자를 움직일 수 없다.

더 사랑할 힘을. 더 꿈꿀 수 있는 힘을. 내가 생각나는 날에는 선생님은 그래서 언제나 겨울 숲에서도 꽃을 볼 수 있을 거야.

우리 늘 그 자리에서 꽃으로 만나자. 평생. 눈을 들면 겨울나무는 빛바랜 나뭇잎과 앙상한 나뭇가지를 하고 있지만 가만 눈을 감고 걸으면 성큼 꽃으로, 웃음소리로 다가온다.

언제나 가을 들녘처럼 넉넉히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에 이내 다사로운 햇볕이 찾아와 왔다.

솜털 같은 신록을 안고 있던 봄에는 드넓어 보이던 숲이 이제는 가장 편한 친구와 대면하듯, 맨얼굴로 서 있는 나무들로 오히려 아늑하다. 백련과 홍련이 피어있던 연못에는 얕은 얼음이 살포시 내려와 있다.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이곳에 숲을 조성하도록 했던 지역 유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어놓은 정자에 도달하여 잠시 숨을 돌린다.

“선생님 예, 신발 신고 올라가도 데예?”

초임지 ‘칠곡’에서 만난 우리 선생님. 그때의 친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자 계단에 한 가족처럼 어여쁘게 놓여있던 아이들, 색색의 신발과 운동화 바라보며 마음 뭉클해했던 선생님.

그 순간이 가슴으로 스미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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