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임기나 마치는 것을 목표로 보신책을 궁리한다면, 과연 우리 교육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교장 선생님예, 확고한 교육적 신념을 가지셔야 되겠꼬마 예.”
“암, 저마다 자율과 책임경영의 기조 위에서 학교를 살려내는 일에 진력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 강화를 도모해야 돼요.”

경악스럽게도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은 공감, 참여, 실험, 미래, 이 네가지가 필요했다. 봉준이 에게 용기가 두렵기도 했지만, 나름의 기대감을 갖게 했던 것이 있어서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은 틀림없이 먹구름이다.

좋지 않은 징조를 비유할 때 등장하는 먹구름이 공기를 압박하면서 무겁게 땅으로 내려앉을 기세다. 그래서인지 거리는 어둡기만 하다. 구름 아래 동네에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얼굴에 표정은 없지만 이들은 볼이 빨갛게 상기될 정도로 지중해서 뛰어노는 중이다.

저 멀리 동생을 등에 업고 길에 나온 소녀의 모습도 보인다. 일군의 아이들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책에 관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보면, 늘 떠오르는 곳이 있다.
 
도둑을 막기 위한 쇠꼬챙이 창살 너머 있었던 초등학교 도서관이다.

작기는 했지만, 창살 건너로 보이는 서가에는 꼬맹이의 눈에는 평생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정도의 책이 꽂혀 있었다. 짙푸른 색의 커튼 틈새로 들여다보면, 도서관 아니 도서실 안은 차분하다 못해 무거운 침묵만이 있다.

봉준이는 거기 한구석에 앉아 마냥 책을 읽고 싶었다. 문자의 배열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와 이미지의 세계에 빠져드는 그 순간, 결코 행복하지 않던 나날의 삶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이의 기억에 그곳은 졸업할 때 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열린 적이 없었겠는가마는, 그것은 책을 읽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는 되었다. 한 학년이 8개반 이었고, 한 반마다 80명 가까운 학생이 있었다. 점심시간 직후 운동장은 아이들로 가득 차서 10미터를 곧장 뛸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 작은 도서실을 개방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도서실은 열리지 않았기에 지금도 아쉽고 그리운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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