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초총동문회, 화합 한마당… 고 민병선 선생 ‘공덕비 이전 제막식’

▲고 민병선 선생의 공로비 제막식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 민병선 선생의 공로비 제막식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치원 명동초등학교 총동문회(회장 고진광, 이하 총동문회)가 동문들의 화합과 모교 발전의 첫걸음으로 ‘명동초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총동문회는 지난 24일 2017 화합한마당 조직위원회(대회장 한상운) 주관으로 ‘조치원명동초등학교 총동문 화합 한마당 행사’를 명동초등학교에서 개최했다.

화합 한마당 행사는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을 비롯해 강준현 세종정무부시장, 유환준 초대 세종시의회의장, 서금택 시의원, 조정대 명동초 교감, 동문 등의 참석속에 시상식, 대회사, 축사, 공로비 제막식, 명랑 운동회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유공자 표창에는 ▲세종시장상 한상운(13회) ▲세종시의회의장상 정세용(26회) ▲세종시교육감상 장복진(17회) ▲대회장상 윤상문(26회), 김근성(30회), 최종록(33회) ▲공로패 유환준 초대 세종시의회의장, 유위준 명동초 교장 등이 수상했다.

한상운 총동문화합한마당 대회장은 “모교의 오랜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명동초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인재가 재산인 대한민국에서 명동초 동문들은 대한민국 발전에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오늘 우리 후배들이 자라고 있는 학교 운동장에서 화합한마당 대회를 통해 더욱 강건한 명동교육의 기틀을 마련코자 한다”고 대회사에 갈음했다.

 
 

한편 이날 명동초 설립 및 발전에 기여한 ‘고(故) 민병선 선생의 공로비 이전 제막식’이 개최돼 민 선생의 장녀 규희 씨를 비롯한 유족 및 동문들에게 더욱 뜻깊은 행사였다.

민 선생은 명동초등학교 초창기 시절부터 학교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집안이 가난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학업을 이어갔고 조치원에서 약종상(藥種商)을 통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 학교 신설 후에는 가족들보다는 오히려 학교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1960년대 초 기성회장 취임 후에는 더욱 열성적으로 나서 학교내 운동·놀이·울타리 시설 정비, 가난한 학생들의 육성회비 대납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마침내 학생과 학교 지원에 이바지한 공로로 공덕비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40여년의 세월이 흘러 민 선생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공덕비는 외진 곳으로 옮겨져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측이 학교을 방문해 이 현장을 목격하고 차라리 선산으로 옮기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민규희씨가 유족들을 대표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민규희씨가 유족들을 대표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고 민병선 선생의 장녀인 규희씨는 “아버지가 명동초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가족을 위해 그것의 반만이라도 써달라고 불평할 정도로 학교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은 분”이라고 회상했다.

규희씨는 “이런 분의 공덕비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무척 안타깝고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인심이 이런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며 “다행히 이런 사실을 알고 총동문회 를중심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공덕비를 옮기게 돼 정말 기쁘고 고맙다”고 말했다.

고진광 명동초총동문회장은 “민 선생을 비롯한 많은 어르신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오늘날 명동초가 존재할 수 있었다. 수십 년이 흘렀다고 이런 노력들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학교 설립에 이바지한 고 민병선 선생의 공덕비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명동초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도 한 걸음 나아갔다”고 강조했다.

고 민병선 선생의 슬하에는 장남 고 종규,  장녀 규희,  차녀 고 정희, 3녀 국희씨,  4녀 영기씨, 5녀 홍기씨, 6녀 형기씨, 7남 덕규씨와 장녀 규희씨의 남편 신형순씨가 생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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