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독할 수 있는 건, 일본군이 체포하거나 살해한 농민군의 신상명세뿐이었는데 신문기사처럼 이름 옆에 나이가 병기되어 있었제.”
“음.”
“기이하게도 십대나 이십대는 거의 없었고 삼십대가 조금, 나머지는 사오십대였제.”
“지금보다 평균수명이 한참 낮았던 시대였잖아?”
“기걸 고려해본다면 대체로 중장년을 넘어 노년이라 해도 좋을 법한 사람들이었잖노.”
“…”
“문득 깨달았제.”
“무슨?”
“와, 젊은이들이라해서 죽창을 들고 나서고 싶지 않았을기가?”
“그래, 할아버지와 삼촌의 뒤를 따르고 싶지 않았으랴. 그이들을 가로막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이었으리라.”
“맞고마!”
“너희들은 젊으니까! 너희들은 살아야 하니까!”
“더러는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주저앉혀 놓았을끼고마!”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제야 협박을 해서라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주먹다짐을 해서라도 농민 따위는 되지도 말고, 생각도 말라고 윽박질렀던 형님들의 서글픈 진심이 손에 만져지는 듯했다. 당신들은 여전히 농민이면서도…

그가 그 천리 떨어진 가난의 한을 안고 굳이 서울에서 검정고시로 유학 아닌 유학을 가는 날 아버지가 터미널에 나왔다.

당신의 한 손에 조선낫이 들려 있었다. 새끼로 돌돌 말아 날을 숨긴 낫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운 버스가 떠나면 곧장 논으로 가실 요량이었다. 당신이 돌아갈 곳은 거기뿐이었다.

첩첩산골에서 살던 소년은 일찍 철이 들었다.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 대신 독학을 택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라 여겼다. 돈 벌면서 공부도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대학 나와 선생님하면 성공하는 것으로 봤다. 악착같이 살았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