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혼자 앉아 있는데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왔다. 너무 슬퍼서 소리 내서 엉엉, 사나흘 간 계속 울었다. 막연히, 내 안이나, 밖에나, 만져 볼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
“하지만, 언제까지 슬픔에 목 놓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
“조문보를 만들자는 지인의 말에, 빈소가 차려지자마자 흰 종이에 니 엄마의 인생을 써내려갔다.”
“…”

“니 엄마는 ‘너와 함께한 삶이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곧 영생을 얻게 된다니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라고 했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등굣길에 안개가 자욱하고 공기가 촉촉했어요.”

겨울 내음도 살짝 나고, 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느낌이었다. 학교가 끝나고서야 아버지가 젖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무언가 새로운 길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강박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

“나는 내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너를 보면 보듬어주고 싶다.”
“저는 감상의 결핍이 있어요.”
“눈물 흘려가며 공부를 혹독하게 시켰는데, 네가 오기가 있어서 끝까지 잘해내리라 싶더라.”
“독하게 했어요.”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사는 게 인생이잖니.”

“나를 지키는 자존감도 슬픔과 좌절을 담담히 받아들인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고요?”
“하지만, 이제 예순을 넘긴 지금도, 나는 때때로 마음이 급해진다.”
“인생이란 게 단번에 뭔가가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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