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카프카의 ‘성’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이후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K가 아직도 ‘성 ’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듯, 나는 아직도 카프카라는 성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두 가지 모습만 요구해. 성녀(聖女)거나 요부(妖婦)이거나, 나도 그래서인지 두 형태를 벗어나지 못해. 단정하거나 관능적이거나, 둘 다 싫어. 그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기왕이면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싶어. 그 싹을 한물간 여자로부터 찾았어. 그래서 더 매혹적인가…

앞으로도 놀 줄 아는 남자가 되고 싶어. 굳이 어떤 여자를 의식하지 않는 남자. 일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남자. 한물간 여자와의 섹스를 통해 ‘사랑이 참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어.

나 역시 여성심리를 잘 몰라. 다혜와 연애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게 ‘오빤 어떻게 여자의 마음을 이렇게 모를 수 있어’라는 말이었어. 그래서 나는 포털 사이트에서 ‘여자들 이런 행동 왜하나’란 문구를 검색한 적이 있어.

난 단순한가? 상대방은 화가 나있는데, 나는 다음 날 싹 잊어. 여자들이 싫어하는 모습을 다 갖고 있어. 성질 급하고, 허술하고, 조금은 다혈질이고, 그래도 뒤 끝은 없어. 짬나면 여자보다는 봉준이 만나 술 한잔하는 것을 더 좋아 해. 다혜가 유일한 연애 상대였고 많이 돌아다녔지.

군대 가고 나서 더 이상 만날 수가 없었어. 그녀는 갑자기 내 곁을 떠났어. 아버지는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선보라고 했어. 한 번도 안 봤어. 인연이 되면 만날 거라고 생각했어. 주변 친구들이 결혼해서 육아에 힘들어하고, ‘결혼 전과 후의 모습이 너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 때 두려웠어.

“글씨가 있는 세상은, 참 놀라운 세상이란다.”

아홉 살 나는 아직 글씨를 읽지 못한다. 속 깊고 정 넘치는 아이지만, 언어적 성장이 교란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읽지 못하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탓이었다. 못 읽어서가 아니라 너무 잘 읽어서다.

언어의 내포와 외연, 사람이 표현하고 싶은 것과 실제로 표현한 것 사이의 불일치를 나는 건너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마음의 결을 읽고 거기에 공감하는 능력이 지나쳐, 그 마음이 제대로 얹히지 못한 글씨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유년은 놀랍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신경 쓰는 나의 민감한 마음을 사로잡는 글은 이후 섬세한 지면을 통해 사려 놓았다. 지문을 동원한 언어는 한국어의 가능성을 한껏 부풀려 풍부하고 아름다웠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설의 대사들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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