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실연당했지?”
“…”

시선을 피하며 탁자에 놓인 컵과 물에 손이 갔다. 그녀는 나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컵을 쥐고 있던 내 손이 떨렸고, 반사적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고 전면적인 실패. 실패의 내부에 있는 한 인간에게 제 존재의 자리인 실패. 거칠고 생생한 시적 에너지로 고급섹스의 허망한 이상을 기습했던 어둠과 몽환적 상상. 통렬한 비판과 짙은 허무감. 어둠 속의 나는 발꿈치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격렬한 통증에 두 눈에선 번갯불이 일었다.

고사(枯死)하는 성교육이 생각나 착잡해진다. 대답대신 두덕두덕 솟아있는 젖꼭지를 입으로 빨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놈들이 이 젖을 빨고 갔겠지… 젖을 빨던 입에서 힘을 빼자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이 세상 나가기 전에 술 맛과 시(時) 맛을, 삶에 대한 무한애정을 갖게 한다. 섹스는 권리와 의무이다.

고통스러워도 견디면 아름다운 것인가. 그 어떤 삶도, 삶이 최소한 자살보다 가치가 있듯, 기억력도 줄고, 몸의 기능도 하나씩 허약해지지만, 섹스에 대한 상상력은 줄지 않는다.

이번 섹스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전력투구를 했는데 호흡도 짧아지고, 길이도 짧아졌다. 그런데도 괜찮다, 여겼다. 화대를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받아든 지폐 몇 장을 센다.

“자기 좋았어?”
“…”

여자는 미칠 수밖에 없는 지옥불의 시간을 거치면서 누구보다도 고통을 잘 통과하는 방법을 알아낸 신이었습니다.

모든 개인은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다. 자기 십자가에 끌려 다니면서 고통에 사로잡히고 십지 않으면 십자가와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 우리 속에는 그걸 가능케 하는 내재신이 존재한다. 그 내재신을 살면서 ‘나’를 삼킨 고통을 바라보고 관조하는 일자이기도 합니다.

고통의 파고가 일어나 내 몸을 찢듯 내 마음을 찢고, 나를 파괴하고 있을 때 드라마를 보듯, 남의 이야기를 듣듯, 거리를 두고 고통의 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나는 경험 너머에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그 무언가에 도달하는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면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최악의 순간을 아는 최고의 순간을 사랑한다고. 그리고 나는 그 최고의 순간까지도 툭툭 털어낼 줄 아는 인생을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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