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을 읽을 때 드는 몇 가지 생각이 있는데, 적어보면 첫째, 작가가 독자를 농락하듯 한번 잡으면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부류가 있다.

작가가 만들어 둔 계획대로 독자가 움직이는 전형적 ‘독자 농락(籠絡) 스타일’이 있으며 이런 작품을 접하면 한 달은 행복하지만, 현실에서  많지 않다.

둘째, 읽는 동안 계속 한 가지 생각만 한다. 다음 페이지에는 무언가 있을 거야, 그게 아니면 분명 마지막엔 무언가가 있을 거야. 대단한 반전이나 숨겨진 진실이 있을 거야. 조금만 참고 읽자 하는 ‘조금만 더 스타일’이 있다.

셋째, 읽을 때는 흥미, 재미, 결말, 범인이 궁금하고 그런 상태에서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 무언가 이상하고, 사기당한 것 같고, 말이 안 되며, 생각하면 할수록 앞뒤가 안 맞는 ‘아! 내가 속았구나’ 스타일이 있다.

‘로스 맥도널드’의 ‘소름’이라는 책은 정확히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5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을 한 장만 더, 한 장만 더, 하며 읽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책 절반 까지 졸면서 봤다.

그래도 3대 하드보일(hard-boiled, 1930년을 전후로 미국 문학에 등장한 새로운 사실주의 수법) 소설 작가라는 극찬이 민망하게 책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어, 꾸역꾸역 한 장 한 장을 수련하는 자세로 읽었다.

읽는 내내 참신하지도 않고, 소설 속 주인공 ‘루 아처’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도 않고,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신비감도 없는 40대 중반의 탐정 아저씨며 001부터 032로 구성된 책의 챕터는 책을 읽을 만하면, 자주 바꿔 몰입에 방해가 된다.

그러나, 마지막은 재미있다. 꾹 참고 읽은 보람이 있다. ‘추리소설’을 좀 읽어 본 독자고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책을 읽는 글쓴이기 때문에 계속 범인을 추리했고, 작가를 가볍게 보고 선정한 범인이 완벽하게 틀리며, 진짜 범인이 등장했을 땐 그동안의 모든 궁시렁과 심술은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혼자 하하하 웃으며, 작가와의 한판 승부에서 “내가 졌소”라고 한마디 하고 엄지 위로 척 할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제목을 ‘소름’보다는 ‘웃음’이 더 잘 어울리지 않나 하는 책이다. 작가와 한바탕하고 마지막에 한방 먹고 씩 웃는 ‘웃음’ 말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루 아처는 캘리포니아를 근거로 활동하는 사립탐정이다. 시작은 결혼 첫날 사라진 신부를 찾아 달라는 다소 황당한 사건 의뢰를 받는다. 아처는 이 사건을 단순한 변심이나 치정 문제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사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하던 중 단순 치정 사건이 아님을 막연히 느끼던 중 젊고 아름다우며 능력 있는 여자 교수가 자신을 도와달라는 의뢰를 하며, 자신의 집으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아처는 급히 여교수의 집으로 찾아 간다. 그러나 여교수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으며, 살인자로 보이는 의문의 남자가 집에서 도망가는 것을 목격 추격하지만, 놓치고 만다.
잠시 후 경찰이 들이닥치고,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루 아처’는 기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살해된 여교사의 제자가 얼마 전 자신에게 사건 의뢰를 한 ‘실종된 신부’이기 때문이다.

결혼 첫날밤 사라진 ‘신부’와 누군가로 부터 위협을 받는 다며 사건의뢰를 부탁한 뒤 살해당한 ‘여교수’ 그리고 이 두 사건을 우연인지 계획인지 한 탐정에게 의뢰된 상황이다.

조사를 하던 중 살해된 여교수와 사라진 신부의 관계가 드러나며 사건의 전말은 20년 전 어떤 사건에서부터 시작되며, 거기서부터 죽음과 다소 복잡한 가족의 구조와 얽히고설켜,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결국 루 아처는 범인의 숨겨진 추악한 비밀을 파헤치게 되며, 그 진실 앞에 우리는 단지 ‘악’ 하는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결말이 중요한 책이기 때문에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발설하기로 하겠다.

책 읽을 때 팁을 하나 주면, 등장인물들이 위로 든, 아래 든, 밑 바닥에서 든, 서로 간에 어떠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아무 의미 없이 나오는 사람이 없고, 읽을 때 복잡하기는 해도 정독한다면, 마지막엔 ‘소름’이 돋을 것이다. ‘할머니’ 했을 때. 얼마나 자존심 상했을까? 무슨말일까?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