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경찰서 경무과장 정규각

  세종경찰서 경무과장 정규각
  세종경찰서 경무과장 정규각
지난 주말에 고창 선운사에 다녀왔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상사화가
온통 지천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도솔천(兜率天) 하늘엔 붉은 노을이 타는데
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루지 못할 사랑을 안고
땅위에 흐드러지게 그렇게 피어났다.
그 무슨 생사를 넘나든 애끓는 사랑이 있었는지
잎 없는 한줄기 대공위에 타는 그리움 각혈처럼 토해놓고
선운사 그늘아래 이렇게 서러운 분노되어 피어나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상사화의 붉은 주단 물결을
계곡 끝 등산로 입구까지 펼쳐놓았다.
도인들만이 산다는 도솔천 자락에
절제된 기품을 안고 솟아난 붉고 애련한 물결!
그대 이름은 못다 이룬 사랑의 노래, 상사화였다.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서로 그리워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슬픈 인연을 보는 듯하다.
영원히 그리워만 한다는 상사화의 슬픈 사랑...
 
상사화에 대한 전설 또한 그렇다.
옛날 어느 고을에
너무나 사랑하는 부부가 살았는데 아이가 없어
간절히 소망한 가운데 늦게야 태어난 아이가 딸이었다 한다.
고명딸로 태어난 아이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이쁨은 온 마을에 자랑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한다.
그러다 아버님이 병이 들어 돌아가시어서
극락왕생하시라며 백일동안 탑돌이를 하였는데
처녀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큰 스님 시중드는 스님이었다.
누가 볼세라... 마음을 들킬세라...
 
안절부절 두근반 세근반 분홍으로 물들어 감이
하도 애절한 가운데 말 한마디 못하고
어느덧 백일은 다가왔으니 불공을 마치고
처녀가 집으로 돌아가던 날 스님은 절 뒷 언덕에서 하염없이
그리워하다 그만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운명을 달리했다 한다.
그 이듬해 절가에 곱게 핀 한 송이 꽃이
그 스님의 무덤 옆이라
 
언제나 잎이 먼저 나고 잎이 말라 스러져야
꽃대가 쏘~옥 하고 올라와서는 연보라 꽃송이를
고개가 무겁게 피었던지라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여 말 한마디 못한
그 스님의 애절함이...
그래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상사화의 꽃말이다.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어 생을 달리하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신선이 노니는 선운사 도솔천 자락에 서러움과 분노의 산을 넘어
단아하고 절제된 자태로 다시 태어나 신과 인간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미학의 결정체!
그대 이름, 상사화를 사랑합니다.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사랑이라는 것,
인연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는 특별한 꽃이다.
한편으로는 흔적도 없이 잎이 사라진 자리에 꽃대가 홀연히 나타나서
다시 꽃을 피우니 어찌 보면 새로운 희망을 주는 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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