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증상도, 시간도, 질서도 포기해버린 경미한 흔들림의 세계. 의도된 답이 없고 끝과 한계도 없는 홀연 흔들고만 가는 매혹의 세계.

내가 가진 비밀스런 발화점을 말하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원인도 없이, 흔들어보는 나는 이렇게 열린다. 마치 바람 부는 창에 펄럭이는 커튼처럼 창밖의 풍경을 잠간 보여주며, “단지 조금 이상”하게 열린다. 순서나 질서, 관념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는 이미 감정적 호소를 포기한 채 친밀히 손을 내민다.

문학, 창조력은 진선과는 다른 영역이다. 도덕성이 강할 때 그에 대항하는 형태로 문학이 나타난다. 도덕이란 말, 그것은 곧 정치이기도하다.
 
정치란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한국문학. 사소설은 ‘나’다. 나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취향과 마찬가지로 미적 성향도 사람들을 묶어주기도 하고, 단절시키기도 한다.

문학은 어렵다. 도덕이 지나칠 정도로 중요했지만, 이제 도덕은 끝났고 문학도 힘들다. 하지만 전통으로 봐서 정치, 도덕에 대한 관심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집단의 기억을, 문학은 개인의 기억을 그린다. 나는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보다 더 정확하고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자칭 회색인이 자신의 상처와 흉터에 대해 눈치 보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에 대한 새롭고 의미 있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시절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봉준이는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아니다 싶으면 까칠하고 매정하게 등을 돌리는 성격으로 은근히 적을 만드는 유형이었지만, 술이 약해 술자리를 기피하면서도 힘들어하는 후배가 있으면 “뭔 고민 있노? 우유나 한 잔할꼬?”하며 손을 내미는 따뜻한 선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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