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이력을 가진 봉준이. 군더더기 하나 없는 단아함. 하지만 깡마르고 단단한 체격, 우둘두툴한 손마디, 인디언처럼 검고 거친 머리, 큰 발로 엉성하게 내딛는 걸음걸이.

먼저, 봉준이를 기억하는 첫 만남. 그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같은 반으로 첫날 만난 짝꿍이었다. 그날부터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당시엔 안경을 쓰고 얼굴이 뽀얀 누가 봐도 모범생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징글징글한 인연”이라며 웃었다.

이방인의 정서는 낯섦과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여준 ‘이방인의 정서’는 나약한 감상이었다. 각자의 지역에서 성장해 온 나름대로 슬픔과 외로움, 어려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슬픔과 외로움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이 있었다. 객지에서 대도시애들과 혹은 주류의 시각에서 보자면, 나와 봉준이는 이방인이자 비주류였다.
 
하지만 그건 누구의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가변적일 지도 모른다. 나는 ‘이방인의 삶’을 좀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당당한 이방인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것이다.

그는 화려한 성공가도에서 행복의 본질을 돌아볼 수도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정의로운 법과는 달리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눈을 일찍 뜨게 되었다.

나는 본질적으로 운동을 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늦된 아이였다. 대학교 1학년을 고등학교 4학년처럼 보냈다. 입학 하자마자 광주가 터졌는데, 운동권 언어는 너무나 생소했다.

투쟁, 모순 매판자본, 주변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나는 늘 주눅 들어 땅을 내려다보며 다녔다. 1학년이 끝날 무렵 처음으로 학보사에서 기자 활동을 했다. 적(籍)은 뒀지만 운동권에서는 늘 주변인이었다.

그리고 2학년 때 학보사에서 다혜를 처음 대면하게 되었고, 당시 운동권 여학생의 전형적 패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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