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제순 충남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연세대와 한국외대를 비롯한 몇 대학의 자유전공학부(이하 ‘자전’)가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전은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이 출범하면서 발생한 잉여정원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대부분 ‘융합교육’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명확한 교육철학과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을 갖추지 못한 채 출발했다. 그래서 운영 방식도 제 각각이다. 일정기간 학생들이 자유롭게 교과목을 이수하고 원하는 학과로 옮겨가거나, 학적을 유지한 채 학생이 원하는 학과에서 전공 공부를 하는 것 등이다. 이런 방식들은 학과 중심의 경직된 교육시스템을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 계기가 어찌 됐든 손동현 교수(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가 언급했듯이 자전의 탄생은 “기존 학과중심의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편협하며 경직된 전공교육에 대한 반작용”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기존 학과 중심의 교육과는 다른 기치를 내걸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대학들은 이를 위해 이미 대학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도쿄대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은 문·이과 두 계열로 나뉘어 고마바 캠퍼스의 문리과대학(College of Arts and Sciences)에서 최소 2년 간의 학업을 이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에서는 학부대학(University College)이나 자유교양대학(College of Liberal Arts)이 대학교의 중심대학으로써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과중심으로 고착된 한국 대학들은 학부대학이나 자유교양대학의 설립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의 많은 대학이 자전을 운영하고 있다.

몇 가지 문제점을 핑계로 그것을 해체하기보다는 융합교육을 지향하는 교과과정을 마련해 운영한다면 장차 학부대학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충남대 자전이 우선 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아직은 정원 50명의 작은 규모다. 하지만 6명의 전임교수가 상주하고 있어 학생들의 밀착 지도가 가능하다. ‘전공의 벽을 넘어 자유로운 사유능력을 기른다’는 교육이념에 맞게 자유교양(Liberal Arts) 중심으로 교과목을 편성했다.

학생들이 4년 간 이수해야할 교과목은 기초 및 전공영역으로 편성돼 있다. ‘기초영역’의 교과목은 필수과목으로 의사소통능력의 함양에 목표를 두고 비판적으로 읽고, 분석적으로 생각하며, 간결하게 글쓰는 능력을 논리학과 수사학, 학술적 글쓰기 등을 통해 단련한다.

‘전공영역’은 인문학, 사회과학, 과학사 중심의 자연과학의 교과목으로 편성돼 폭넓은 학문분야의 학업체험이 가능하다. 고학년에서는 세미나과목을 통해 시사성이 있는 사회적 이슈를 다방면에서 접근하고 그것을 통해 종합적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고 있다. 물론 고학년에 이르러서는 학부내외에 설치돼있는 다른 분야의 교과목을 복수(부)전공으로 이수할 수도 있다.

충남대 자전이 학부대학과 유사한 형태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은 지식전수가 아닌 ‘능력개발’에 무게를 실은 이런 학부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는 손 교수가 이미 제시한 바 있는 대학교육의 선도 모델이 될 수 있는 전제조건들을 모두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운영시스템은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2010년에 발표한 ‘한국 대학 교양교육의 구조적 난점과 과제’라는 논문에서 간단하게나마 언급하고 있는 학부대학의 현실적 대안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서울의 유명대학들은 물론 충남대에서도 자전 해체라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일로 인해 우리나라 대학발전을 위한 소중한 불씨가 사라지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국내 대학들이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제 교육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양교육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우리나라 대학들이 세계수준의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설파한 서 장관의 신념이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져야 할 때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각 대학의 자전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그리해 교육부는 학부대학과 유사하게 교과목을 운영하고 있거나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는 자전이라면 안정적으로 정착돼 학부대학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 자유전공학부의 해체는 해당되는 대학의 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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