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당신에 대해서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내가 내던져버린 희망에 대하여 아무런 것도 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당신에 대하여 어떤 직접의 윤리, 어떤 직접행동의 미학(美學)을 내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가장 철저히 방관할 것입니다.

내가 멸망한다는 것은 당신의 이유 없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가장 천박한 지성인이 되고자합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오면서 다혜를 보면, 내가 먼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면, 나는 그 순간 영원한 사랑에 직면할 것이다.
 
더 이상 핑계의 유혹에 빠지지 말자.
어떤 고난에도 무릎 꿇지 말자.
푸르른 창공 가르는 갈매기처럼 당신을 향한 날개 짓을 더 이상 멈추지 말자.

전화를 거는 순간. 나는 영원한 사랑에 접속됐다. 세상을 품어 안는 그 자비 안에서 영원한 만남을 위해. 두근거림으로 손가락은 떨렸다. 대수롭지 않은 휴대전화 하나가 그토록 내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잠시 동안이지만 어쩐지 우울한 기분마저 돌았다.
처음 대하는 목소리는 어떨까? 긴장의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송산이야…”
어렵게 진정을 하여 내뱉은 목소리는 떨렸다.
“…어머, 오빠!”
역시 다혜도 바르르 떨리는 음색이었다. 다혜의 음에는 색깔이 있다. 그렇다. 분명 그녀만의 자줏빛 색깔.  그리고 그 색깔에 난 민감했다. 나는 ‘색청자(色聽者)’라 부른다.
“보고 싶었어…”
“안돼!”
단박에 내뱉은 외마디. 의외로 단호했다.
“무조건 나와!”
강철음(鋼鐵音)을 내뱉었다.
“그러면 안돼…”
“정문에서 기다리겠어!”
한참 만에 다혜가 답했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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