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귀의(歸依), 귀가(歸家), 귀성(歸省), 귀향(歸鄕).
돌아간다는 말은 후회이거나 비애라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돌아간다는 것은 일종의 후퇴이기 때문에.

멀리 떠나간 여자가 있다. 몇 년이나 기다렸는데도 돌아올 기약이 없다. 돌아오기는커녕 고개 한번 돌려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기다리는 이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 믿으며 그녀가 돌아올 그 날 까지…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멍청해지고 눈길은 텅 비어 있다. 그 앞에서는 모든 게 무력해지고 무릎을 꿇어야 한다.

왜?
사랑은 결국 병이요. 독이기 때문이지. 지상에 얽매인 내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는 성스러운 광기이기 때문에 사랑은 악귀와도 같은 것. 아름다움을 잉태하고 분만하는 위대한 마녀와도 같은 것이니까…
오랜 기다림. 그 끝에는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지 않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은 막막하다. 그 기다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한 평생의 기다림은 더욱 그렇다. 결국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먼저 찾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내 예상과는 다른 모습의 그녀를 발견한다면?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나를 더욱 참혹하게 만들지도 몰라. 그래서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는 방문은 위험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줄지도…

마침내 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헛된 기대에 부풀어 찾아간다면 그 순수함에 살짝 실망할지도. 내가 그녀의 방문을 기다리는 동안에 그녀는 잠들어 있었고 얼굴은 이미 늙어 버렸으면 어찌할까. 그래도 시들어버린 내 사랑과 욕망에, 혹은 내 기다림의 허송세월에 작별을 고하는 방식을 취해야할 것인가.

하얀 눈이 내리던 날에 하얀 솜사탕을 먹었던 여자. 하얀 담배를 한 개비 건 내 주며 하얀 연기를 뿜도록 성냥불을 당겨주었던 여자. 맥주잔 가득 하얀 거품을 따라주었던 여자. 나를 온통 하얀 추억으로 가득 채워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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