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온종일 속옷 차림으로 소파와 한 몸이 돼버리는 게으름. 그러나 시시콜콜 쫀쫀한 수빈이는 나를 천금인양 챙겨주었다. 내가 아플 때는 짜증부터 내는 이기적인 나에게 고운 정을 되새겨 보게 했다. 내가 변한 것일까. 수빈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려 하지 않아서 일까. 내 마음 속에 숨어있는 미움의 정체를 짚어본다.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루하다.
푸른 창공에 한줄 비행기가 외롭게 지난 흔적이 너무 또렷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어떻게 헤어나야 할지. 더 이상 즉흥적인 글은 공허할 뿐…”
“원래 작가란 공상도 많이 허다보이 절망을 자주 느끼곤 한다더커만.”
“인생이란 늘 사납고, 마치 머나먼 혹성 위로 집어던져진 것과도…”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해안가를 산책하면서 봉준이에게 던진 말은 바로 내게 비수처럼 되돌아왔다.
“마, 니 알아듣지도 몬할, 또 그 놈의 인생론이가. 아참, 니, 장가 들고픈 본능 아이가?”
그 말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인간의 2대 욕구는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이라 카더라. 대부분 먹는 것은 원초적 본능으로 생각카겠지만, 배설하는 것은 화장실에서 일보는 것만을 생각칸다 카지 않노?”
“단연, 배설은 인간의 본능이지.”
“기래. 모이면 내보내야 하는기라. 기리고 때가 데몬 내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카더마. 묵은 것은 내보내고 새 부대에 새로 싱싱한 정자를 담아야 하는기라.”
그 말은 더욱 나를 당황케 했다.
“참, 다 큰 사람 놓고 무슨 성교육 하는 거니?”
봉준이는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해냈다는 듯 침을 튀기며 말했다.
“니, 잔말 말고 내 얘기 좀 더 들어 보그라. 밥과 섹스는 남성에게 비슷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기라. 기래서 남성은 섹스를 하면서 긴장과 스텐레스를 풀고 행위가 끝난 뒤에 사랑을 느끼는 거 아이가.”
섹스는 소유욕과 비슷한 말로 남녀 간에 항시 유치한 사랑과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야, 알았다. 그만 해라. 뭐 뻔한 상식 같고.”
“내 중요한 얘기는 아직 덜 끝났고마.”
“그래, 그럼 어서 해봐.”
“기래서 섹스를 통해 마누라를 만족시키고 즐겁게 해주었다는 자아존중과 자아성취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이겠노.”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외다. 하하하.”
“야, 니는 내 말을 무슨 씨잘머리 없는 얘기로 들어선 안 되는기라. 기래서 가정은 경쟁사회로 나가기 전 서로를 위해 재충전하며 기 살리기 본당이 아이가.”
“그래, 그렇다고 해둘게. 임마.”
봉준이는 특유의 카랑한 목소리로 주저 없이 외쳤다.
“암, 기래서 밥도 잘 해먹이고 그것도 잘 해준다면 기도 팍팍살고, 용기백배하여 ‘음매 기 살아 ’할게 아이겠노.”
“누가 아이 그러겠노. 그래 니나 잘 즐겁게 보내그라. 하하하…”
“이노마 자슥 영, 말이 안 통하는 고마. 배우자에 대한 성적인 자신감이 있으몬 그놈이, 이십대의 몸과 같이 하늘로 향할 뿐 아니라 사정시간 조절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카드라.”
“그래, 하림씨와 알콩달콩 사는 니가 한없이 부럽다. 부러워 임마.”
허공에 뿜어내는 담배연기 만이 속절없이 바닷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다혜에 대한 무슨 말이라도 끄집어내야만 했다.
“체념은 자신을 아는 것이야. 체(諦)란 자세히 살펴 안다는 뜻이지. 쉽게 포기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쉽게 체념한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래서 체념은 그만두고 거두는 일에도 공을 들여야 해.”
“봉준이는 느닷없이 내 체념 론에 말없이 가던 발을 멈추어 섰다.
“…”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고집스런 이기주의자들 인가 말이야. 어째서 이리도 추악해져야 하는지…” 
“기건 인간들에 질투 때문 아이겠노.”
“서로 다투고 빼앗고, 어리석은 짓으로 피를 토하고…”
“야, 니 맘 내캉 넘 잘 안다카이. 일편단심 잊지 못하는 다혜 땜시라는 걸. 만나보지 그카노. 보고 싶고마 내도.”

나는 너를 그리워하며 오직, 지리 한 글과의 투쟁만을 해야 했다고. 나는 쓰고 그것이 좋아서 그것에 의하여 매우 안락한 생활을 한다고. 아니야, 나는 지쳐빠져 다리 하나를 묻고 사랑의 열병에 걸려 늪에 빠진 중병환자. 그래도 나는 당장 풀 향기를 그리워하며, 그 향기 높은 풀 한포기 담을 바구니조차 갖추지 못한  초라한 겨울나무.
풀 향기와의 만남, 그리고 바다, 이 자유분방한 바다에서 조차도 나는 자신의 육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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