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방문이 열리며 김치, 마늘 냄새가 바람과 함께 밀려왔다.
“어머, 이제 깨셨어요? 선생님!”
웃음을 머금고 수빈이가 하는 말이 살갑게 다가왔다.
“어, 그래 과음을 했던 것 같아. 몸이 예전 같질 않아…”
“아이구, 이 담배냄새야, 휴.”
수빈이는 코를 한 손으로 가리고 창문을 열어 제 꼈다. 한쪽에 몰려있는 술병을 가리키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저 만큼이나 많이 드시고선, 선생님도 이젠 제발 몸 생각 좀 하셔야지요.”
걸레를 들고 술병이 쓰러져 흘러내린 거실바닥과 담배꽁초로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수빈이는 싹싹 닦았다.
봉준이는 그제 사 부스스 눈을 뜨며 눈앞의 펼쳐진 장면을 보고 미안한 듯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저런, 걸레질을…”
나도 그런 수빈이 에게 미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허허, 그래두 우리 수빈이가 챙겨주니까 이만하지.”
“선생님, 두 분이서 같이 산책 좀 하세요. 기분도 풀겸…“
“어, 그럴까. 야, 봉준아 바깥바람 좀 쐬자. 온몸이 찌뿌드 해.”
“에구, 벌써 이리 시간이 됐노.”
시계를 찬 왼손을 들어 올리며 봉준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바께 날씬 어떤고. 우리, 수빈 아씨?”
“아주 쾌창해요. 데이트 하기엔 참 좋은 날씨예요.”
“카아, 어이 하몬 좃치. 긴데 수빈 아씬 언제 국수 멍노. 아, 이제 갈비탕 머글 날이 언제고.”
“호호호, 아이 참, 때가 돼야지요.”
하얗고 선이 가는 얼굴에 뚜렷한 눈썹. 싱긋 웃는 입매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땐 무슨 땐교, 허연 모감지 허물 다 벗겨질라.”
그 말에 함께 껄껄 웃었다.
“야, 이 친구야 무슨 농담을 그리해. 허허허…”
순간 얼굴이 벌개가지고 수빈이가 문을 홱 닫고 사라졌다.
“수빈이가 참 딱코마. 시집도 안가고 언제까지 예서 무꺼 둘끼고. 문학 수업도 고만콤 했음 많이 했지 않았능교. 니 파워로 문단에 콱 등단 시켜야 않겠노.”
낯익은 봉준이 목소리지만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들렸다.
“그러게 말이야. 내 능력이 부족한가봐. 무력한 나한테 무슨 더 배울게 있다구…”
“무신, 능력 탓이가.”
“제대로 된 음식점이라면 주방에서 칼을 잡는데 7년이 걸린다고 해. 그때까지 고기를 정확히 아는 것이지. 하물며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넘나드는 문학이라면 더 오래 걸리지 않을까? 너무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심이 없기를, 독자를 하느님처럼 떠받드는 겸손함이 배어야해…”
봉준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온갖 고생을 하는 수빈이를 보면 이제 미안함을 벗어나 어떤 경외감을 갖곤 해.”
“어느 제자가 스승이 홀아비로 불쌍이 보내는디 떠날 수 있갔노. 어서 니부터 빨리 장가 좀 들라카이!”
“그래, 니 말이 맞다. 하지만 어디 금방 얼렁뚱당 아무나하고 장갈 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니 좋다, 죽고 몬사는 싱싱한 것들이 즐비헌데, 왠 핑겐교.”
농담일지라도 봉준이 말은 나를 더욱 당혹케 했다.
 “그만 해라. 어서 씻고 밥이나 먹자.”
그제야 봉준이는 순순히 꼬리를 내렸다.
“기래 알겠데이. 위대카신 작가님. 헤헤헤.“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고 자신감 넘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다소 엉뚱하다. 예의 없고 건방지다는 비난도 제법 받는다. 공격적이고 예측불허인 송산 스타일처럼 그녀도 편하게 대하기 힘든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야누스의 일면엔 깔끔하고 예의바르며 자신에 대해 엄격한 작가 지망생이다. 옷과 수건은 반듯하게 개어 쓰고 상냥하게 인사를 잘한다. 아무리 바쁜 일정에 쫓겨도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도 매섭지만 군말 없이 걸레를 집어든 수빈이가 더욱 믿음이 가는 것이다.
수빈이는 명문가의 외동딸이다. 자신은 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반대했다. 수빈이가 다시 차를 끓여서 갖고 나타났다.
“외롭지만 강건하셨던 어머니께 언젠가는 좋은 글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리데면 니 엄메와 아베는 얼마나 기뻐하시겠노.”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왔어요. 3년째 연락을 끊고 있어요.”
“수빈이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어찌 보면 문학은 미련스러운 고집이 있어야 하거든…”
“야, 그라 보니 두이다 똑같이 고집불통끼리 모였고마. 그 스승에 그 제자라 카더니,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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