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아이쿠, 우리 수빈 아씨가 손수 찌개를 끓여갖고 왔나보이.”
수빈이는 멋적은 듯 미간을 잠시 돌렸다.
“네, 속 푸시라고 해삼탕을 끓여 봤어요.”
“워디 한 번 떠 볼꼬.”
수빈이가 냄비 뚜껑을 열자 뽀글거리며 구수한 냄새가 순간 방에 동했다.
봉준이는 후 불며 먹음직스레 듬성듬성 쓸어놓은 파를 헤집으며 국물을 한 수저 떴다.
“헥헥, 아고마, 아! 뜨거라!”
“하하, 야 성질도 참 급하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냐, 천천히 뜨지 그래.”
“카 죽여준데이, 산아, 니도 한 수저 떠본.”
봉준이의 눈빛은 즐거움이 역력했다.
“그래, 어으. 칼칼하니 정말 끝내주네.”
봉준이는 옆에 엉거주춤 앉아있는 수빈이에게 한 마디 했다.
“수빈아, 니 문학수업은 대체 언제 끝나노?‘
“끝은요? 계속 도전 정신으로 나가야지요? 호호호…”
“참, 대단코마.”
활달한 수빈이 다운 대답이었다.
 “한 번에 다 가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잖아요…”

서울 출생의 명수빈은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전 과목을 ‘올 A'를 받았을 만큼 수재로 도전을 즐기는 악바리다. 그녀는 끊임없이 도전으로 삶을 채워왔다. 고등학교 때 우수한 성적으로 집에서 의과대학을 권했다. 언젠가 나에게, 그러나 내 소설을 읽고 문학에 빠졌다, 라고 고백했다.
지금 내가 강사로 나가고 있는 여자대학에서 내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결국 졸업 후 내 문하생으로 들어왔다. 나로부터 문학 수업을 받아 나름 우물안개구리에서 벗어나 나의 문학세계에서 큰 꿈을 펼치고 싶어서였으리라.
“힘들지 않노?”
봉준이가 측은해 보였는지 힘없이 물었다.
“…”
“주변에서 그 정도면 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혹독하게 채찍을 가했고 수빈이는 항시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습작하는 모범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르다는 듯 한마디 했다.
“나는 늘 불면의 밤을 보냈고, 매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쓰기에 전념했어.”
“니 그런 거 내도 잘 안다카이.”
“모든 책들 위에 나의 불안한 영혼이 떠돌고 있어. 내 영혼뿐이겠니. 내가 만든 책에 내 혼이 담기는 건 당연해. 한 권의 책에 빛나는 옷을 입히기 위해 몇 주 동안 책상 앞에서 밤을 새우고도 만족하지 못해 울던 그 밤들…”
“그래서 꿈꾸는 ‘대맥’은 어쩌면 그런 니 고독의 물음에 미소를 던져주었는지 모르겠고마. 꿈꾸는 이 시대의 초 베스트셀러로 말이제.”
봉준이의 그 말이 듣기에는 좋았다.
“서울은 오천 개가 넘는 서점과 24시간 시인의 작품 낭독회가 열리는 찻집들이 있는 화려한 지상과는 달라.”
그것은 내가 항시 품고 있던 말이었다.
“…”
“정상에서 빛을 보지 못한 책들의 무덤인 지하세계는 돈을 찾아 헤매는 책 사냥꾼들의 피비린내로 가득한 곳이야…”
“기래 어쩌노, 문학과 출판도 자본의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현실이 아이가.”
“우리의 삶에 비수 같은 깨달음을 끝없이 던져주고 있어. 나는 한때 배운 지식을 총 동원해 수많은 글들을 집필할 수가 있었지.”
봉준이와 수빈이는 내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심각해보였다.
“기래.”
“그런데 어느 순간 수천 권의 책들이 몸 위로 쏟아지면서 더 깊고 위험한 지하 세계의 쓰레기장에 떨어지고 말았어. 절망의 순간이라고 부르짖었어…”
봉준이의 놀라운 눈빛이 투명한 유리잔에 빛났다.
“…”
“수백 가지의 착상들이 내 머릿속에서 마구 소용돌이쳤어. 소설, 시, 에세이, 희곡작품들을 위한 착상들로, 내 분노와 저항심에서 솟구쳐 나온 것들이.”
“산아, 니는 증말 누가 머래캐도 대단하고 위대한 작가인기라.”
“절대 고독과 위험 속에서도 걸작만을 알아보고 꿈꿨던, 때론 도마뱀처럼 연약해 보이는 나였어.”
“송산, 너는 이 시대, 걸작만을 알아보고 꿈꾸는 우리 시대의 참말로 귀중한 인물 인기라…, 수빈인 긴데 어떻게 잘 되어 가노.”
봉준이는 다시 먹음직스레 버티고 있는 싯뻘건 게를 걸죽하니 손으로 끄집어내 아작아작 씹으며 수빈이에게 말을 돌렸다.
“전, 도전이 재미있어요…,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10년 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너무 클 것 같거든요. 도전 자체에 매력을 느껴요. 선생님 밑에서의 문학수업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안목을 갖는 기회가 되었어요.”
“기래, 참말로 다행 이고마.”
“문학은 국가 간 장벽이 없는 극한 경쟁을 의미하고 있어. 한국 문학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개인과 국가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
맑게 빛나는 수빈의 눈이 깊은 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문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소설가에겐 조국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문학 역시 단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해 존재하며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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