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봉준이는 무엇이 불만스러운지 이마에 주름을 잔뜩 펴며 담배를 피워 물고 앉아 말문을 열었다.
“내 사마 이놈의 주둥이에서 쌍 욕이 안 터져 나오게 됐노 마!”
“그래, 니 맘 잘 알겠다. 살살 얘기 좀 해라. 내 절대 귀 안 먹었응께, 임마.”
봉준이의 말투엔 늘 힘이 들어있었다.
“긴데 이놈에 멘주정분가 하는 것들은 말만 번지르르해. 예나 지금이나 뭐 달라진게 있어야제, 대체 없는 놈은 워디 서러워 살갔노. 그놈의 강남공화국인가 카는 곳은 아파트 한 평이 몇 천만원이라 안카노.”
당황되어 나는 말문을 급히 열었다.
“야, 너도 서울 바닥에 집 한 채있으면 중산층이야, 뭘 열 내고 야단이냐.”
하지만 나는 그에게 졌다는 듯 한손을 들어 보였다. 나는 그가 의례 자본 비판론을 제기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빨리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어. 당연히 우리 집에서는 직접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너 어릴 적, 시골 얘기 좀 해줄래?“
봉준이는 갑작스런 시골 얘기를 꺼내자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고 나선, 무언가를 생각하듯 입을 열었다.
“항상 배고프던 시절이었제,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누렇게 영글어가는  밀밭을 지나다 친구들과 밀 서리를 하곤 했제.”
“정말 재미있었겠네.”
“아직은 설익은 밀을 한 움큼 뽑아 마른 소나무 가지에 얹어 놓고 불을 붙여 초조허게 익기를 기다리던 심정은 지금 생각케도 가슴이 설레고마.”
그는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서글 거리는 눈방울을 굴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밀을 손바닥으로 비벼 먹으면 참 고소했겠네.”
“기래서 내, 언젠가는 시골로 가야하지 않겠노…”
봉준이는 말끝을 흐리며 무슨 회상에 잠기더니 묵은 실타래 풀 듯 술술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명절이나 제사가 다가오몬 시골집은 웬통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로 가득차곤 했는기라. 할머니가 찹쌀 반죽을 튀겨낸 것에 조청을 바르시는 동안 퇸 마루를 왔다갔다카며 ‘꼴깍’ 침을 삼켰지 않나.”
나는 그 말에 침이 절로 넘어갔다.
“아, 참, 맛있었겠다.”
“기럼 말이라 카노, 제사 음식 중에서도 가장 품이 많이 드는 것이라며 할메는 한과 만들기에 신경을 억수로 썼는기라.”
“허, 그래?”
“제사 모실 때까지 쪼개만 기다리라, 유과에 눈독을 들이는 나와 동생들에게 휘휘 손을 저으며 쫓는 시늉을 하시던 할메, 주름 깊은 얼굴에 희미하게 번지던 미소가 눈앞에 선하고마.”  
아쉬움에 눈빛이 서린, 긴 여운을 남기는 말이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건만 가족들이 먹을 약과와 강정을 손수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돼 버렸어.”
“메칠을 꼬박 들여 과자를 만들어내던 정성과 여유는 바쁘게 돌아가는 요즘 시상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데이.”
나는 그와 있으면 항상 편했고 함부로 내뱉지 못하는 내 속의 답답함을 끄집어 낼 수 있어 좋았다.

봉준이는 다시 담배를 한 모급 빨더니 연기를 천천히 뿜어냈다.
“위대카신 대 소설가님. 긴데 니 장가는 안가고 이런 청승 언제까지 떨긴가.”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 한잔 쭉 마시자.”
그렇게 술을 권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긴덴 말이제 내 궁금한게 있다카이.”
“뭔데?”
“헤헤, 와 니는 그리도 다헬 몬 인노?”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술 한 잔 들이 키고 있는 나에게 봉준이는 궁금하다는 듯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니 증 몬 이즐거 가틈, 한 번 당당이 만나지 그카노…”
“…”
봉준이의 반박이 담겨진 갑작스런 나의 침묵. 늘 울고 난 것 같은 눈 속에 박힌 다혜. 산을 깊은 구름이 감추고 있듯. 구름의 동굴 속에 나는 다혜를 그리며살고 있다. 
“참말로, 글쟁이들은 참, 알수가 없고마.”
봉준이는 답답하기라도 한 듯 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며 술잔을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때 새침하니 수빈이가 상을 들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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