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커텐 사이로 벌어진 유리창 너머, 장대한 기골과 뭉툭한 콧망울에 검게 그을린 얼굴과 탄탄한 체구를 가진 건장한 한 사내가 나타났다.
“에잇! 저놈에 도둑괭이!”
그는 손을 크게 내저었고 거친 소리로 쫓는 시늉을 했다.
새는 앙상한 가지를 친 나무보다 싹이 우거지고 새로운 싹이 돋친 희망의 나무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나무는 언젠가 벌거숭이가 된다. 그리고 가지를 절단 당한 꼴이 된다. 응오는 항시 새들과 까마귀가 머물던 포근한 노송을 보기 좋게 전지를 했다. 언제나 가지 치는 것이 그의 주요 일과였다. 대담한 정원사 응오는 나를 가끔씩 불안케 했다. 그 노송은 열렬 문학팬이라고 자칭하는 충청도 해안가에 거대한 자연 생태공원을 조성한, 한 젊은이가 직접 보내준 해송으로 수령이 적어도 이백년은 되었음직한 거목이었다. 나는 가끔씩 그 노송을 바라보며 실없이 중얼거리곤 했다.
“교송지수(喬松之壽)라…”
  
푸른 잎과 축 처진 자태는 매우 정감이 갔다. 응오의 전지행위가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는 듯해 불쾌하기도 했지만 높은 곳까지 올라가 노송의 나뭇가지를 절단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꽤 열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새들은 나를 안심 시키기라도 하듯이 쌍 갈래진 곳이나 잘려 떨어진 가지를 피난처로 삼았다.
이상하게도 이 나무는 다른 살아있는 나무들 보다 더 새들이 잘 찾아들었고 특히 까마귀가 이른 새벽이면 ‘악악’대며 악을 쓰고 짖어댔다. 어느 해질 무렵이었다. 허공에서 매와 까마귀의 깃털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매는 까마귀의 거세어진 기세에 당하지 못하고 목을 움츠리더니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다시 까마귀는 중심을 잃고 아래로 방향을 바꾸는데 매는 날개를 접고 위로부터 곤두박질치면서 까마귀의 머리를 쪼았다. 치명타를 받은 까마귀가 뭍에 처박혔고 매는 다시 위로 드높게 날아올랐다. 매는 자랑스럽게 맴돌더니 지친 듯이 해송 굵은 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매는 다른 때처럼 바닥에 내려오지 않았고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만 퍼득일 뿐이었다. 해송의 깊은 구멍 속에서 이번에는 구렁이가 기어 나왔다. 구렁이는 비늘을 번쩍이며 사리를 풀고는 나무를 타고 ‘꿈틀꿈틀’ 기어올랐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이윽고 폭우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려왔다.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번쩍였다. 빗소리와 우렛소리 속에서
밤새껏 퍼덕이는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동녘이 부옇게 밝을 즈음에 나무 둥치 아래에 구렁이의 사체가 떨어져 내려 왔다. 나뭇가지에 걸친 채로 날개와 부리를 축 늘어뜨린 매의 형상이 보였다. 어저께 매가 나무에서 끝내 왜 내려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쿵, 쿵!”
수빈이가 방문을 요란스레 두드렸다.
“선생님, 오늘 일찍 군산에 가셔야지요.”
“아! 참, 그렇지.”
머리를 두어번 좌우로 흔들며 베개를 고추 새우곤 잠시 상념에 젖었다. 오늘 가야할 곳은 군산으로, 인접한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엔 스승인 법우 스님이 머물러 있다.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고 문안도 올릴 겸 금산사에 머물고 있는 스님을 찾아뵙기로 했던 것이다.
수빈이와 정원사인 응오를 남겨 놓은 채, 먼 여정의 길에 올라야한다. 첫배가 포구를 떠나는 시간에 맞추자면 지금쯤은 어서 서둘러 선착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희망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도록 밝아온다.
“음, 좋아.”
짧게 외마디를 내뱉고 가뿐히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이 몸을 스치는 순간. 미세한 각들이 악을 지른다. 그래도 모른 척, 두 눈 질금 감고 찬물로 그의 각들을 깨운다.
“아하! 그래서 재채기가 나고, 열이 나고, 온몸이 요동을 치는 구나…”
 
내가 떠나고 나면 수빈이는 집 모퉁이 방에 남아 참담하게 하루해를 보낼 것이다. 어쩌면 고통인지 열정인지 모를 무의도의 푸른 파도소릴 들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사랑의 가는 빗소리 같은 주술에 걸려 깨지 않는 잠이 들것이다. 잠속엔 성애(性愛)를 나누다가 머리가 새가 되거나, 가슴이 뚫리거나, 화성인의 모습이 되거나, 한없이, 한없이 공중으로 떠오를 것이다. 작은 돌들이 바닷물에 밀려왔다 밀려나는 소리가 ‘사그락 사그락’ 옥구슬 굴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의 색도 바다의 빛도 그리고 사람들 마음마저 파란나라. 감청빛 물에 빠져 수줍어하는 바다 끝에 홀로 남아 에로티시즘을 바다와 함께하리라.
인간 본성에 대해 드러 내놓고 성찰하게 하는 자유의 나라. 노을 아래서 파도를 굽는다. 
아, 이렇게 내 맘에 드는 곳이 어디 또 있으랴, 오붓한 내 세상이…
그 작은 행복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배에 올랐다.

달 바위 선착장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곱게 그린 반달 모양의 눈썹처럼 생긴 해변. 거기에 적당히 섞여있어 걷는 맛. 해변 뒤 수 십년 된 아카시나무 병풍. 아카시아 향기에 취해 바다를 바라보는 신선노름. 해당화 무리의 지고 피어남.
무의도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강화도 ‘함허동천(涵虛洞天)’에서 민박집을 하는 동네 사람 때문이었다. 놀러 왔다가 우연찮게 신비의 섬, 무의도의 전설을 한 노인으로부터 듣게 되었고, 그 신비로움에 취해 그곳의 모래 언덕을 손에 넣었고, 거기에 자신의 영토, 사랑과 죽음의 왕국을 건설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의도와 송산’이라고 새긴 커다란 돌에 나름대로 이렇게 선언문을 써 놓았다.
‘바다는 무의도를 섬으로 고립시킬 생각이 없고, 무의도 또한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 와 서 있다.’
섬의 형태가 장군복(將軍服)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아 무의도(舞依島)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무의도를 ‘바다에 떠있는 검붉은 달’이라고 표현 했다. 달빛이 밝으면 밝았지 검은데다 붉기까지 하다니 과연 이 바다에 비친 달은 어떤 색일까. 끝에서 끝까지 한달음이면 닿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해변은 활처럼 휘어져 마치 호수같이 아늑했다. 달빛에 비친 조각난 파도가 은빛 해변을 살며시 간질이면 밤하늘의 크리스탈 별빛이 코발트색 밤바다로 부드럽게 애무했다.

저작권자 © 세종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