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고등학교 2학년, 당시 국내 최고의 권위지 유력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일약 당선되어 각종 메스컴의 각광을 받았던 송산. 아버지는 마치 아들이 유명 소설가라도 된 듯 기뻐했다.
그런 그의 요즘은 어떠한가?
지금은 이 한적한 외로운 절해고도 무의도에 묻혀 세상과 단절한 채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에 강사로 나간다. 그와 교류하는 자들은 이곳 몇몇 지인들과 문학관련 선·후배 외에는 특별한 사이가 없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함이 그를 편안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늘 혼자서 원고를 주무르고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대화하는 방법조차 잃어버렸다.
세상으로부터 홀대받던 송산이 미운오리새끼 신세에서 우아한 백조로 탈바꿈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송산은 오늘날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주목되었다. 그에 열광하는 독자를 보면서 평론가들은 팽팽히 맞섰다. 그의 출현을 ‘대한민국 문학사 통틀어 가장 신선한 사건’이라고 옹호하는 축이 있는 반면, 심지어 그의 사진을 보면 ‘이게 어디 소설가냐란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 부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따뜻했다. 바다를 사랑하는 것처럼 세상도 사랑한다. 그의 소설은 늘 낮은 곳의 사람을 말했다. 뜬금없이 출몰하는 예측불허의 상상력 뒤엔 시퍼런 비판이 숨어있었다.

나는 정말 괴짜로 괴팍스런 면도 있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며, 진짜 고뇌의 철인일지도 모를 일이야. 내 소설은 한결같이 남녀의 변형된 누드, 둘이 하나가 된 남녀의 에로, 인간 자유 의지의 외침과 해골이 상징하는 무슨 죽음의 두려움, 초현실의 환상과 징그러운 파충류의 무서움이 있다고들 해…

그에게서 내면 어디쯤에 이렇게 사회적 도덕규범을 뛰어 넘는 변태의 에너지가 솟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저 푸른 혜원을 향하여 외치는 원초적 본능의 목소리가 끓고 있는 것일까.

그는 밤마다 추호의 거리낌도 없이 다혜를 끌어안고 그녀의 냄새와 살갗에 애욕을 찾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깊은 연민의 정이 그를 감싸며 온순한 그의 육체는 거기에 빨려들곤 했다.
어떤 곳인지 망설임도 없이 다혜는 늘씬하게 큰 키와 갈색 머리를 자랑스럽게 뽐내면서 잔잔한 웃음을 띠웠다. 그녀는 몸을 S자로 그리는 것 같이 아름다운 음악소리와 함께 몸의 근육이 드러나면서 그 움직임의 방향에 에너지가 전해지는 춤을 추었다.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의 소리와도 같이 몸의 움직임으로 그 형태를 표현해서 춤을 탄생시켰다.
마치 그 아름다움이 검은 천사의 마지막 몸부림과도 같았다. 그 바쁜 몸놀림에는 모두가 묻혀버릴 것 같이 적막했다.

“당신은 나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던가요?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기 전에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했던가요? 당신의 진짜 눈빛을, 진짜 머리 빛을 말해준 사람이 있던가요? 당신은 밤을 무서워하나요? 그리고 당신은 높은 곳을 꿈꾸나요?”
“……”
“가엾은 바보.”
독백처럼 다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그래 난 정말 바보야!”
자신의 몸을 의도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춤추는 동작을 반복하는 다혜 곁으로 눈을 부릅뜨고 바짝 다가가서 외쳤다.
“그래. 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너를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어야해!”
다혜가 눈물을 흘리면서 애처로워했으나 아랑곳없이 다혜가 걸친 옷을 모두 풀어 해쳐 바닥에 팽개쳤다. 그가 여기 온 것도, 오기로 결심한 것도, 그 자신의 답답한 심정과 같은 만큼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었다.

막무가내로 다혜를 껴안고 침실로 갔다.
“이런 차림으로 첫 순정을 맞고 싶지 않아요!”
“괜찮아!”

빙그레 웃으면서 하얀 시트를 꺼내어 보았다. 그곳엔 분명한 선혈의 자국이 진하게 맺혔다.
음, 다혜가 이런 처녀 반응을 보일 줄은…
믿어지지 않는다. 깊은 희열과 승리에 취했다. 침대 시트의 주름이 ‘쥐선상의 아리아’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이런, 연출을 홀로하고 또 행복에 겨워했군. 가엾은 아, 내 청춘…”
침을 ‘꿀꺽’ 삼키며 아쉬움에 중얼거렸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날아다녔어…, 스스로 흡족하게 날아다니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웅크리고 누워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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