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04 날라리 농부의 가지치기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시골에 들어온 지 3년째다. 첫해에 들어오면서 종중 땅으로 몇 해 묵은 땅 하나를 구해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산 밑에 있는 땅인데 다시 개간이고 뭐고 할 것 없이 풀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에 그냥 나무만 백이십 그루를 심었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부터 농사짓는 걸 가지고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복숭아를 제대로 먹으려면 그렇게 심으면 어떡하냐, 종자는 어떤 게 좋다, 왜 지금 복숭아를 심으려고 하느냐 등등, 옆에서 잔소리 하고 싶은 노인네들이 볼 때 내가 하는 일이란 다 어설퍼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난 묵묵히 복숭아 나무를 다 심었다. 옥천이 시댁인 여동생 시아버님이 어렵게 구해준 천중도라는 늦복숭아였다. 

작년에는 드디어 복숭아 몇 개를 따 먹었다. 집 지으러 다니느라고 소독도 한 번 안 하고 풀도 깎지 않아 밭이 산이 되었지만 복숭아는 몇 개 맛보기로 열렸다. 

나중에 토끼가 갉아먹고 까치가 쪼아먹어 제대로 된 복숭아를 따먹지는 못 했지만 천중도의 맛은 본 셈이었다.

오늘은 전지가위 하나 들고 밭으로 향했다. 겨울 사이 나무들이 부쩍 커 있었고 풀들도 산처럼 복숭아 밭을 덮어 누가 보아도 날라리 농사꾼인 내 밭이라는 걸 다 알 만했다. 

어머니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동네 사람들 챙피해 죽겠다, 농사 그렇게 질려면 아예 남한테 줘라, 낯짝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복숭아 나무들도 그동안 머리를 덥수룩하게 길러 내가 전지가위를 들고 온 걸 반기는 듯했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자라 있었다. 

우선 쓸데 없이 딴길로 뻗어나간 싸가지 없는 가지들을 잘라냈다. 
도움이 안 되는 나무들이 많았다. 꼭 사람도 그렇듯 쓰잘데기 없이 뻗어나가는 독불장군들이 있다. 열매 맺는 데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다. 

가지를 칠 때도 열매 맺을 걸 구상하며 전지를 해야 했다. 아쉬워도 싹뚝 자를 놈은 과감하게 잘라야 했다.

여기 고향에 돌아와 제일 먹고 싶은 게 복숭아였다. 
어렸을 적에 당도가 많아 쫘악 갈라져 맛을 더했던 복숭아의 옛맛이 그렇게 그리워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도 사람들이 돈이 된다고 복숭아밭을 다 파헤쳐 배나무를 심는 바람에 이제는 복숭아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조금 있으면 복사꽃이 만발하겠지. 그 옛날엔 우리 동네가 온통 복사꽃이었는데 지금은 배꽃으로 변해 있다. 
복숭아 하면 옛날부터 조치원이 유명했다. 

어렸을 때도 우리 집은 복숭아밭을 했었는데 아버지는 대나무로 엮은 큰 상자를 짐 자전거에 싣고 나가 저녁 해가 넘어갈 때쯤이면 술이 거나하게 취하셔서 동네방네 고성이 고샅 밖에서부터 들려오곤 했다. 

아버지는 읍내 나가 복숭아를 팔아 술 한잔 마시고, 7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먹이려고 국수 가락이나 몇 관 사오는 게 일이었다.

돈도 안 되고 시간도 없는 내가 복숭아 농사를 짓는 건 이런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길이 나는 바람에 없어져 버린 내가 살던 그림같던 개울가, 비 오는 날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 복숭아 밭에 가 물렁한 복숭아를 따먹던 기억들, 배 고플 때 아침 이슬을 바짓가랑이에 묻히고 복숭아밭에 가던 일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리워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런 추억들을 되새김질하느라고 날라리 농부가 되어 복숭아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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