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03 뺑소니,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고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아침나절이었다. 어제 주문했던 컴퓨터가 도착한다고 해서 컴퓨터 책상을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버둥대는 중이었다. 어젯밤에 들어올 때 내 차를 앞에 주차해 놓았기 때문에 내 차를 뒤로 이동해 놓고 아내 차를 앞으로 빼놓았다. 

아내 차는 학원을 옮기면서 새로 뺀 스타렉스고 내 차 역시 1년밖에 안 된 리베로였다. 
리베로는 고등어 살 발라놓은 것같이 생긴 트럭이다. 생긴 게 꼭 그렇지만 이 트럭은 승차감도 스타렉스나 똑같고, 배기량이며 속도도 만만치 않다. 고속도로를 올라가면 이 차를 따라오는 차가 별로 없다. 

차 주인의 운전 실력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견인차가 거의 리베로로 변해가는 추세이다. 스타트가 좋고 속도가 빨라 그렇다고 한다. 

아침부터 컴퓨터 책상 만드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아내, 오늘도 다른 날처럼 출근이 늦어 허둥대다 시간에 쫓겨 나가는 게 보였다.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고 뿌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한쪽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기분이었다. 

저거 박았군. 나는 마당을 번개처럼 달려가 보았다. 
아내는 아직도 사태 파악을 못하고 후진을 더 하려고 액셀을 밟아대고 있었다. 난 소리를 뻑 지르고 앞으로 차를 빼라는 시늉을 했다. 

그제서야 아내는 눈치를 채고 차를 멈추었는데 내 차는 종이 구겨진 것처럼 한쪽 볼떼기가 볼썽사납게 찌그러져 있었다. 

“야, 차 세워. 빨리 나와!”

생각 같아서는 별 욕이 다 나왔지만 꾹 참고 소리를 질렀다. 아내는 찌그러진 차보다 더 험악한 내 얼굴을 보고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완전히 고슴도치처럼 몸을 움츠리고 차에서 내려왔다. 

“난 자기가 차를 뺀 중 알고 뒤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후진했지!”
“뭐? 뒤를 보지도 않고 후진하는 사람이 어딨어.”

나는 아내 차에다 화풀이라도 하듯 거칠게 후진을 해 차를 저만치 빼놓고 아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내 차를 한 번 쭈욱 훑어보고 자기 차도 한 번 훑어 보더니, “내 차는 멀쩡하네, 히히. 여보 미안해. 내 차가 더 단단한가 보네 히히히히.” 하고는 저만치 서 있는 자기 차 앞으로 가더니 손살같이 줄행랑이라도 치듯 차를 타고 달아나 버렸다. 

“야, 경찰서에 전화하고 보험회사에도 전화해. 어딜 도망가! 뺑소니에 완전한 현행범이야! 신고하면 당장 구속이라는 걸 몰라?”

나는 내 얼굴만큼이나 찌그러져 있는 차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아니, 하루 종일 속이 상해 죽는 줄 알았다. 어디다 화풀이할 수도 없고 하소연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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