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라져 가는 풍경들

02 사라져 가는 풍경들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시골에서는 정월 대보름이 설날보다도 더 큰 명절이다. 오늘 아침나절부터 동네 안내 스피커에서는 이장의 쩌렁쩌렁한 안내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동네 주민 여러분~ 알려드립니다아~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이라 동네 청년덜이 동네 어르신분덜을 위해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윷놀이두 하구 막걸리두 대접해 드릴려구 합니다아~ 주민 여러분덜은 한 분두 빠짐 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아~”

읍내에서는 달집 태우기 행사가 있고, 연날리기, 깡통 돌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작년 연날리기에서 그래도 시골 살던 경력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가 거의 1등을 차지하다시피 했다. 

시골로 귀농한 지 1년이 되지만 시골생활의 즐거움은 이렇게 겨울날의 한가로움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겨울에 할 일이 없어 아침밥만 먹으면 어슬렁어슬렁 동네 한 바퀴를 돌곤 한다. 그러다 어느 집에서 발동이 걸리면 댓병짜리 소주 하나 까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 와 괜히 할 일도 없으면서 이것저것 일거리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아까는 밑에 사는 형님이 윷놀이 한 번 하고 들어오더니 일거리를 찾다 못 찾았는지 집 앞 호두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조금 전에 창밖을 바라보니까 옆집 40 된 노총각이 심심한지 안뜰 논에 가서 불을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굳이 내가 짚을 왜 태우냐, 그냥 거름 되게 냅둬라, 잔소리를 해도 동네 한가운데로 연기를 날리며 짚동가리를 태우고 있었다. 단지 심심해서 그런 소일거리를 만들어 일을 하는 것이다. 

오후에 동네 스피커로 하도 나오라고 떠들기에 나가 보니 동네 청년들과 아줌마들이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청년들이라야 내가 마흔하난데 청년 모임에 안 끼어줄 정도로 고령화되어 있었다. 
환갑 전이 청년회고, 환갑이 넘으면 장년회로 구분된다. 상여를 멜 때도 동네에 사람이 없어 환갑 안 된 청년들이 겨우 숫자를 맞추어 멜 정도였다. 

“어, 여기 총각덜하구 처녀들이 한판 붙는디, 일인당 만 원썩이야. 이건 오늘 읍내 가서 노래방 한 번 가자구. 이런 때 노래방 안 가보고 언제 가봐.”

동네 이장이 바람을 잡고 여자들이 윷가락을 던지는데 이건 소리 지르는 것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해 우리 팀이 게임도 안 되게 져버렸다.

화톳불에 돼지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소주병이 수도 없이 옆으로 자빠져 나가고 있었다. 
환갑을 얼마 전에 넘은 정순이 아버지는 노인들 측에서 놀아야 하는 게 억울하다며 청년들 팀으로 와서 기웃기웃거리는 바람에 청년들한테 구박을 당하고 있었다. 

시골의 이런 풍경을 보면서 자꾸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겨울의 한가로움, 동네 사람들이 심심해 이집 저집 기웃거리는 풍경, 안뜰에서 홀연히 올라오는 쥐불 연기 등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이었다.

거의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없어지면 시골은 과연 누가 지킬 것인가? 시골도 이제는 우리들의 기억 속으로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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