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임기순 엄니께 바칩니다”

                 ▲장승현 작가.
                 ▲장승현 작가.

20년 전에 쓴 귀농일기다.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이렇게 나도 고향에 정착했다.

난 쓸쓸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네 살 때부터 20세 초까지 난 말을 안 하고 살았다. 그래서 어렸을 땐 반벙어리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어머니가 네 살 때부터 날 업고 다니며 충남대병원에서 수술비가 없어 담을 타는 게 다반사였다. 
국민학교 때는 1년에 거의 3~4개월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친구들이 가끔 승현이 죽었냐 하는 소문까지 들었다. 중학교 때도 아파서 서너 달 학교에 못 갔는데, 중 2때 오래간만에 학교에 가서 200명 중에 혼자 수학을 100점 맞았다.

지금은 주변에서 술을 마시면 나보고 장뻥이라 놀린다. 
말이 많고 제일 시끄럽다고 난리다. 그동안 얼마나 말이 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방언이 터져 글을 쓰게 되었나?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조국통일운동과 민중운동을 해왔던 우리는 2000년대를 맞으며 막막한 앞날을 생각했다. 다들 어깨가 한풀 꺾인 채 고민했다. 당시 우리의 탈출구는 귀농이었다. 

진안에 사는 후배가 강력하게, “형, 여기와 같이 살자. 저기 해발 700미터 30만 평을 내 포크레인으로 개간해 같이 살자.”라고 권했다.

이 말에 혹해 한동안 첫 귀농지로 진안군 주천면 무릉리에 꽂혔다. 그러나 거기서는 먹고 살 게 없었다. 

버섯농사나 산판일 등뿐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게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고향, 고복저수지가 있는 고복리에 정착했다. 내 소원인 목조주택 집도 짓고, 아이들이 시골생활을 즐기게 했다.

대전 영세민 아파트에서의 아이들의 삶은 너무 우울하고 싫었다. 
큰애는 엘리베이터에 갇혀 한동안 폐쇄공포증이 있었다. 주변의 슬럼가 같은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결정한 게 고향으로의 귀향이었다. 내가 평생 지방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것 하나는 잘한 것 같다. 시골의 정서를 느끼게 해준 것.

2000년 그때, 광야와도 같은 내 인생의 제 2막인 시골 고향에 정착하며 써놓은 귀향일기다. 
그냥 내 인생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글이다.

2021년 6월 장승현

■작가 장승현은?
1963년 연기군 고복지수지 부근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한옥 건축목공기능사 자격증을 따 목수일을 시작한 이후 목조주택 전문목수로 37년을 살아왔다.
7년동안 소설 공부를 하다가 1987년 6월 항쟁이후 대전민청회장을 역임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세종뉴스 발행인으로 7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백수문학, 연기문학, 세종문학에 소설을 다수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귀향해 목수일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저서 
우렁이 무침에 쐬주 한잔, 장목수의 목조주택 이야기,  단편소설 방랑기, 개판, 금남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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