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과 미리엘 신부(神父)’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장발장과 미리엘 신부는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다. 

프랑스 라브리 지방의 노동자로 가난과 배고픔에, 가엾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툴로의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 4차례나 탈옥을 시도하다 결국은, 19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였다. 

그가 출소할 때는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던 어느 겨울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날은 더 추웠고, 그렇게 추위와 배고픔을 참고 거리를 방황하는데, 저 멀리에 성당(聖堂)이 눈에 보였다. 

성당에 도착한 장발장이 성당 문을 두드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리엘 신부가 따듯하게 맞아주며 식사와 잠자리를 내주었다. 

배도 부르고 얼었던 몸도 풀리자 장발장은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다가 찬장 안에 반짝이는 물건을 바라보니 꽤 값이 나가는 금 촛대와 은 식기가 수두룩했다. 장발장은 이 물건들을 가져다가 팔면, 쾌 큰돈을 만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물건들을 훔치기로 마음을 먹는다. 

신부가 잠들기만을 기다리던 장발장은 신부가 코까지 골며 잠이 들자, 보따리 안에 이 물건들을 쓸어 담고는, 조용히 성당을 빠져나오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경찰의 불심검문(不審檢問)에 잡히고 만다. 

보따리안의 물건에 대해 어디서 난 것이냐는 경찰관의 질문에 장발장은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만 너무 고가의 물건이라 거듭 바른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장발장은 성당의 신부가 주었다고 말하지만 경찰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장발장을 데리고 성당으로 갔다. 
경찰의 방문에 깜짝 놀란 신부는 경찰 옆에 장발장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사태를 짐작한다. 

경찰이 신부에게 장발장이 훔친 물건들을 보이며 정말 신부님이 주었느냐고 물으니 맞다고 하면서, 오히려 한술 은촛대도 가져가라고 하니까 왜 그것은 남겨뒀느냐며, 친히 은촛대를 챙겨 장발장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신부는 선의에 따라 양심을 속이기는 하였으나, 용서와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그리고 미리엘 신부는 장발장에게 오늘부로 당신의 영혼은 내가 샀으니 앞으로는 새로운 삶을 살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변해, 장발장은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몽트뢰유쉬스메르라는 도시에서 장신구 사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했고, 또한 구제(救濟)사업을 통해 시민들의 신망을 얻으며, 마침내 시장(市長)직에 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종교 지도자의 영향력은 어디를 막론하고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카톨릭 성직자인 신부의 서품식(敍品式)은 다른 종교 예전(禮典)보다 성대하고 엄숙하다고 한다. 

그 서품식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순명(殉名)을 약속하는 신임 신부의 각오가 남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주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어떤 존재도 버리겠습니다. 라는 자기 죽임의 엄숙한 약속일 것이다. 그래서 신부에게는 지금까지 20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독신(獨身)이 강요됐을지도 모른다. 

또한 술과 담배를 핀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 때마다 그 분들은 격심(激甚)한 고독과 싸우고 있는데 그나마 술, 담배가 조금 위로가 된다면 백번 선물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변명 아닌 대리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그렇다. 다른 목회자와 달리 신부는 노예 복장을 하고 생활한다. 
신부의 목에 두르고 있는 하얀색의 천은 “나는 주님의 노예입니다.”라는 상징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를 믿던, 믿지 않던 신부가 식사하면 그 음식 대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어느 날 신부와 수녀들 몇 분이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뒷모습은 분명 인간을 초월한 신선(神仙)과 다름없어 보였다.

하지만 세상이 잘 돌아가고 사람들이 먹고 살만해서 그런지, 신(神)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마치 시어머니가, 아들, 며느리들이 잘 살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김을 받는 것과 같고, 아들이 이혼을 하게 되면 자기 손자를 할머니가 부둥켜안고, 자기 뼈를 갈아 먹이듯 그 손자를 돌보기도 한다. 

그땐 시어머니가 그 가정에 다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가나안 성도들이 늘어만 가는 추세이고, 교회의 기도원들이 텅텅 비어 있어, 바겐세일 중이라고 한다. 

즉, 시어머니 같은 하나님이 우리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는 말일 것이다. 

요즘, 유난히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부들의 추태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박주환이라는 자(者)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전용기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합성해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글을 넣은 사진을 올려 논란이 돼, 이를 항의하는 댓글에 일일이 ‘반사’라는 답 글을 달기도 했었다. 

또한 김규돈이라는 자(者)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온 국민이 ‘추락을 위한 염원’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올려 국민적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일까! 혹자는, 이 저주스러운 글로,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선동은 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지주인 성직자의 도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으니, 반드시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며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신부가 돼 자기가 주인으로 섬기는 예수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주인인 예수를 죽인 것이라는 것을 신부(神父)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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