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敎室)을 살려라!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강용수 전 세종시의회 부의장.

기원후 70년대의 유대인 이야기다. 

로마의 군대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완전 파괴하고, 유대인을 전멸시키려고 하였다. 
그 와중에 유대인들 중에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람들과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이스라엘을 살릴 수 있을까? 이 위기를 어떻게 하면 넘길까? 

고민하다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강경파 때문에 성(城)을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온 성안에 자신이 중병에 걸렸다고 소문을 내고, 얼마 지난 후 죽었다고 다시 소문을 낸 다음, 관에 누어 야밤에 성곽을 빠져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로마군의 총사령관 베스파시아누스를 만나러 가기 위한 전술이었다.
사령관의 얼굴을 보자 “장군, 당신은 곧 황제가 곧 될 것입니다.” 

사령관은 그에게 황제를 욕되게 한다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두고 보십시오. 내 말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로마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농담은 그만하고 나를 찾아온 용건이나 말하시오.”

“제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조그마한 방이라도 좋습니다. 학교의 교실(敎室) 하나만 남겨 주십시오. 그리고 그것만은 절대 부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이때, 로마에서 사령관이 왕으로 임명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사령관은 깜짝 놀라서, “꼭 그렇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령관은 작은 학교 하나 만큼은 꼭 남겨 두라고 로마 군인들에게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그 이후, 요하난 벤 자카이가 지도하는 소수의 바리사이파인들이 세운, 유대학교 ‘예시바’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신앙의 지도자를 길러,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디아스포라)들의 신앙 정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기에, 오늘날 이스라엘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행여 나라가 망해도, 설상 성벽이 무너져도, 아니, 국민의 대다수가 죽어 나간다고 해도 신앙과 교육만 살면, 언제든 나라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어린이들의 학교 교육은 이렇게 작은 교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교실은 신성(神聖)한 곳으로 여겨져 오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꿈을 꾸는 것만 같다. 
세계 7위를 자랑하는 경제 및 첨단 기술의 보유 나라이자, 국민 소득 3만 8천불의 고소득의 나라다. 세계가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다. 10대 교역국이 된지 오래고 세계 국방력이 6위를 마크하고 있다. 

그런데 학교 교육이 시들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돌이켜보면, 이해찬 이란 자(者)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대한민국 학교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교사는 노동자로 정보를 공급하는 공급자이다. 학생은 정보를 소비하는 소비자라는 개념을 심은 장본인이다. 

현행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자유와 권리 보장을 위한 명분으로, 이 나라 교육청 중에 다수가 이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이 조례가 학교 교육을 잠재우는 수면제로, 교권을 짓밟는 광기(狂氣)가 됐다고 말한다. 요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를 보면 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선생님이든 깨울 수 없다는데 학생 인권의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설 학원에서 선행교육을 받고, 학교에 오면 들을 것도, 배울 것도 없어서 잠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대다수는 수업에 관심이 없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한편 근대교육의 뿌리는 BC 100년에서 AD 100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공자와 노자, 맹자 같은 분들이 인격 교육에 이바지했고, 이스라엘에서 유대교의 랍비중심의 인격 교육, 그리고 기독교의 예수를 통한 인격 교육, 중동에 마호메트와 인도의 불교를 시작한 석가모니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헬라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교육 방법론은 제자와 선생의 인격적 만남과 대화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교육은 창의적인 것에 방점(傍點)을 두고, 묻고 답하고 그리고 함께 생활을 나누며 인격 도야(陶冶)를 해 왔다. 결국 대화와 명상, 삶의 나눔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나누고, 깨달음과 진리와 논리의 탑을 쌓았던 것이다.  

허나, 요즘 이 나라의 교육은 정치에 너무 흔들리고 있다는 푸념들이다. 
즉, 교육부 장관이 경질되든지, 대통령이 수십 번 바뀌든지, 정당이 엎치락뒤치락하든지, 이런 이유는 정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교육은 정치적이어도 안 되고, 대중적이어도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교육을 살리는 길은 우선 교사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폭력과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무시당하여 눈물을 흘리게 하는 나라는 언젠가는 그 국민도 피를 흘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혹자는 말한다.
문재인 정권에서 제작한 새로 출판될 교과서에 자유가 빠진, 문구가 등장하고, 좌편향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변질시키려 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종시가 세계적인 명품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 자유특구’라는 문패를 달아야 한다.
즉, 세종시의 교육도 전교조와 보수냐의 정치논리에 안주하다 보면, 세종시민들의 눈높이보다,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한편, 세종시교육감은 전교조 출신이 내리 세 번, 지방선거에 당선됐다.  

반면에, 세종경찰청은 2020년 9월 결혼을 앞둔 이태환 당시 세종시의회 의장에게 축의금 200만원과 고가 양주 1병을 전달한, 최교진 교육감 부부를 공직선거법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起訴) 의견 송치한바 있어, 사법처리 여부에 시민들의 이목이 집중돼 왔다. 

검찰은 하루속히 법과 원칙에 의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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