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박정환이 폭력적으로 강제한 일본제국주의식 ‘유신’ 또한 개인의 내밀한 양심까지 지배하겠다는 권력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충성스러운 신민들의 내면을 관리하는 ‘교화’정책이 잘 먹혀들지 않자 일본제국은 폭력적인 전향 정책에 호소한 것이다. 

그러니까 양심의 가책과 사과를 법률로 강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폭력을 써서라도 개개인의 사상과 양심을 통제하겠다는 일본 제국주의 전향 제도를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일제의 사상전향 정책은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일제의 전향자 관계단체인 보도연맹을 그대로 본뜬 이승만 정권의 국민보도연맹,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부정한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그리고 5공 당시 학생운동권을 대상으로 한 녹화사업이 그것이다.

대전 형무소 등의 정치범 수용소는 사상범들에 대한 고문과 폭력을 동원한 전향 공작으로 악명이 높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강요하는 전향 공작은 양심수의 실존을 부정하고 인간적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비밀경찰, 박정환의 중앙정보부 또한 정치범들의 내면까지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박정환이 위대하다는 역사학자는 한 사람도 없다.”
“박정환이 한국경제를 세웠다고라예?”
“백성들이 박정환의 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경제뿐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경제가 발전한 것이 전적으로 박정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물론 박정환 밑에서 일하거나, 또는 박정환의 덕을 본 사람과 집단은 달리 말할 수도 있겠고마예”

박정환이 50년대에 집권했다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겠는가 하면 답은 아니다. 또한 6·70년대는 박정환이 없어도 홍콩, 싱가폴, 또는 대만, 홍콩, 브라질, 멕시코처럼 경제가 발전했을 것이다. 

국제적 환경이 바뀌었고 또 1959년 쿠바가 공산화되고 나서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반공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들을 중심으로 경제지원을 집중적으로 한 결과이기도 하다. 

“박정환 한 개인 때문에 나라가 발전했다는 것은 말이 안돼. 지금도 한국은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가 든다고 하지.”
“미국의 상황에 따라 매일 주가가 널뛰기를 하죠.”
“일본도 전쟁에 패배한 직후에는 장군들도 거지 같은 신세가 되었는데 이웃 나라 한국에 전쟁 발생으로 특수가 생겨 하루아침에 나라가 돌아가고 부흥의 기틀을 이루게 된 것인만큼 국제상황이 중요한 몫을 한다는 말이고, 경제발전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다는 말이고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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