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유정회)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원장과 법관도 대통령이 정하고, 국회해산권, 중요정책의 국민투표 회부권, 기타 막강한 대통령의 비상대권까지 손에 넣었다.

김일성을 능가하는 독재 권력 합법화 조치가 완결된 것이다. 

완전한 정상의 비정상화였다. 박정환에게는 통일에 대한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직선제를 피하고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는 최선의 선택이 북한의 김일성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서로 내밀하게 약속한 것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꼭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7·4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박정희가 영구히 대통령 자리를 차고앉고, 이미 해오던 민주정치를 완전히 뒤엎고 제왕적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는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박정환은 대통령이 가져야 할 도덕성, 합리성, 합법성을 완전히 깔아뭉갰어요.”
“대한민국은 무한한 권력욕에 사로잡힌 그에 의해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져갔다.”
“국민도 함께. 김일성도 박정환의 유신헌법 제정 두어 달 후 자신의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대를 이어 독재 권력을 세습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조치를 완료했다고 해요. 남쪽이나 북쪽이나 독재자들에 의해 상처투성이의 나라로 전락했던 거예요.”

“박정환의 5·16쿠데타는 순조롭게 성장할 경제와 민주정치 발전에 엄청난 방해가 됐지. 박정환이 5·16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우리나라의 군대가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본연의 길을 착실하게 걸었다면, 그리고 정치는 정치인들에게 맡겼더라면 정치인도 국민도 알찬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빨리 선진민주국가 대열에 들어섰을 것이고마예.”
“박정환은 강도가 하는 짓처럼 총칼로 정권을 탈취했어요.”

민주당 정권과 당시 경제협의회가 합심해 만든 경제개발구상, 그 구상을 구체화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 등 프로그램도 몽땅 빼앗았다. 박정환이 총칼로 빼앗은 장면 민주정권은 단지 9개월 된 정권으로 쿠데타를 당할 만큼 악한 정권도, 부패한 정권도, 무능한 정권도 아니었다. 

오히려 정권 담당자의 면면이 애국적이고, 착하고, 어질고, 그래서 민주적이고 비교적 깨끗한 선비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우리 국군이 국토방위 임무를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에만 매진하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것이다.

“장면 민주당 정권이 만든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그대로 실행에 옮겨, 그 공을 가로챈 독재정권은 부끄러움을 가져야 할 것이야.” 

인간의 가장 내밀한 양심까지 지배하겠다는 야심은 파시스트적 인간형, 사회주의적 인간형을 만들겠다는 ‘인간개조’ 혁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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