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박정환의 유산. 정수장학회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전국의 장학생들이 한데 모여 친분을 맺는 자리.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장학증서 수여식과 전국 하계 수련회를 동시에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불참하면 안 될 것이다. 

이외에 비교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도 있는데, 8월 달의 육영수 여사 추도식 같은 경우이다. 

행사 진행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 자발적인 도우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청오회 내부의 조직이 잘 짜여져 있는데, 각 지역마다 지회장-부지회장-총무로 이루어진 임원단이 존재한다. 

임원단은 보통 장학금 수여 2년차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선을 넘는 것을 친근감의 표현이라 착각하고, 무조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교조적인 믿음을 깨야 한다.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 선을 넘지 않는. 

“5.16장학회의 모태인 부일장학회의 소유권이 이전되는 과정이 법률적·정치적으로 하자가 없는 ‘기업가의 헌납’인가요? 권력에서 물러서지 않으려는 쿠데타!”
“아니야. 군부세력이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뺏은 ‘권력의 강탈’이었지.”
“국가로 헌납한 재산을 5.16 장학회로 불법 이전한 것도 논란이 되었고마.”
“부일장학회는 김지태의 재산으로 만들어진 장학회였어.”

김지태는 5.16 이듬해인 1962년 3월 재산 해외도피 혐의 등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두 달 정도 구금 생활을 하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쓴 며칠 뒤 공소 취하로 풀려났다. 

박그녀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일장학회의 재산 포기는 헌납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지태의 큰아들 김영구 전 조선견직 회장은 “그해 5월 25일 부산 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서 아버지가 수갑을 찬 상태로 운영권 포기각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었다”며 “내가 장남이라 인감도장을 가지고 가, 현장을 똑똑히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5.16 장학회는 김지태가 재산을 ‘헌납’한 닷새 뒤 설립됐다. 
제한적 사고를 넘어서지 못하면 국민은 언제나 코끼리 다리만을 만지며 코끼리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독재자의 세계는 그러한 것인가.

“정수장학회는 겉으로는 공익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이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쿠데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대통령은 민주적 투표로 선출되어야 하는 것도 알텐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을 거예요.”
“박그녀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기도 했고마.”    
“김영삼은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을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비판했어.”

이에 앞서 2005년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는,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 주식, 부산일보 주식, 영남대, 부동산 등 그 재산을 최소 1조원이라고 추산했으며, 많게는 10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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