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그로부터 2년이 안 돼서 6·25전쟁이 터졌다. 박정환은 전란 중에 문관에서 현역으로 복귀했다. 그래서인지 박정환은 6·25전쟁 때도 큰 무공을 세운 것이 없는 것 같다. 

박정환은 태어나서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진정성을 가지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공을 세우거나, 봉사를 한 적이 없었다. 

오직 상처투성이 나라를 만든 독재자였다. 박정환은 휴전 후, 군사쿠데타를 꿈꾸며 자유당 정권 말기부터 계획을 구체화했다. 그러다가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쿠데타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박정환은 합법적으로 무기를 다루는 직책을 악용해 5·16쿠데타,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강도가 하는 것처럼 총칼을 들이대 국민에게 겁을 주고, 직계 상사들을 협박해 쫓아냈다. 

하극상으로 대통령격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육군 소장이 총칼을 들이대 대통령 자리를 빼앗았다. 

시작도 무법·불법이었지만, 과정도 무력에 의한 강권 통치였다. 툭하면 비상조치·긴급조치·위수령·계엄령으로 국민을 협박하고, 도처에 고문 취조실을 만들어 놓고 국민을 괴롭혔다.

“내가 소수자고 패배자였다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뭔데요?”
“역사는 승리자들이 쓴다고 하지만, 그러면 승리자들이 베어 넘긴 수많은 목숨들 속에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그럼 역사는 승리자보고 쓰라고 하고, 패배자는 소설을 쓰라고 하면…”
“너무 슬픈거 아이가?”

박정환의 유산, 정수장학회 장학생들 간의 교류를 중시하기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대학생 장학회 중에서 가장 장학생 모임의 빈도가 높다. 

지역 모임, 혹은 전국모임이 거의 매달마다 일정으로 잡혀 있으며, 이를 통해서 단결력을 과시하며, 은연중에 ‘친박그녀 헤게모니’를 젊은 층에 전파하는 간접적 효과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세월을 민망하게 만드는 이 유령의 정체는 뜻밖이다. 

전체주의다. 산업화 세력을 자처하며 시시때때로 독재자 박정환의 기억정치에 의존하는 단수 보수세력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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