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사슴이 살았던 시대는 “주름진 조국의 차가운 겨울? 빙하 29도? 역사는 노천”에 떠는 동토의 계절로, “분 바른 식민시의 하늘에? 태양은 슬프게 뜨고 진다”고 하셨죠.

절박해진 사슴은 “이제 목자는 없다? 우리 스스로 메시아가 되려 하는 것이다”라며, ‘그 붓으로 기어이 검찰 이겨내고자/ 어둠을 쪼개는 안간힘”으로, “제 몸 태워 어둠 밝히는? 한 자루 촛불”로 승화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내 땅의 평화와 민주와/ 그리고 하나 됨을 위하여/ 꽃이 꽃으로 피고 노래가 노래로 울려 퍼지는/ 그날을 찾아가는 발걸음/ 그대여/ 다시 떠나지 않으려는가./ 이 벅찬 역사의 나그네 길을…”이라고 아버지는 채근합니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 하나의 진실을 마련하는 일인가/ 그것은 외로운 작업/벅차고 눈물겨운 일/”이었다. 

 “아버지 이런 개탄이 어찌 1960년대만이었겠는가요?”
 “맞고마, 예. 그 뒤에도 반복되는 우리민족사 아닌가예?”
 “아버지의 그 해학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지요.”
 “8.15 해방 후의 대립과 혼란, 남북한의 전쟁, 장기집권, 군사독재, 저항과 투쟁 등 연속된 광풍 속에서 무슨 즐거움, 무슨 기쁨이 있었겠는가. 가난과 절망, 피폐와 탄압 따위의 불운한 팔자 속에 무슨 옷을 입었겠는가”라면서 “대중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것도 지식인의 한 사명”으로 여긴 데서 아버지의 유머는 비롯되었다. 

아, 이제 어디서 웃을 일을 찾지요? 흔히 해방 이후 모든 대통령은 실패했다고, 불행했다고 싸잡아 매도한다. 동의 할 수 없다. 우리에게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다. 

국민의 정부 5년은 역사 속에서 빛나고 있다. 김대중이었다. 
하지만 나라 경영에 실패한 보수 무리는 성공한 김대중 정부와 자신들을 견주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의 유산을 구체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통령의 공과를 정치(精緻)하게 규명해야 한다. ‘정치’없이 어찌 민주주의가 발전했겠는가.
동강 난 나라지만 현대사를 들춰보면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순간과 감동적 일화들이 들어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국 사례만 들먹이며 국내 정치를 무조건 비하하는 얼치기 보수 지식인들이 많다. 자기 집 안에 금은보화를 쌓아놓고도 깡통을 들고 구걸만 하고 있다.

보수 얼치기 정치인들을 보면서 다시 김대중을 떠올린다. 국민에게 버림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국민을 믿었던 김대중,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신을 거부하는 무리에 끊임없이 다가갔다. 지금 그가 있다면….

김대중은 퇴임사의 맨 마지막에 쉰 목소리로 당부했다. 
“우리 모두 하나같이 단결합시다. 내일의 희망을 간직하고 열심히 나아갑시다. 큰 대의를 위해 협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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