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재찬

“구국 여성봉사단 문제만 해도 그래. 당시 항간에서 말이 많던 최태민이 총재, 박그녀가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는데 김재규가 국국여성봉사단의 문제점을 보고한 후 박그녀가 총재, 최태민이 명예총재가 됐어.”

“박정환이 최태민의 실권을 뺏는답시고 두 사람의 자리를 맞바꾼 거지요.”
“김재규는 자기가 괜히 조사를 해서 오히려 개악이 됐다면서 뒷조사한 걸 후회했대요.”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의 비리외에도 박그녀에게 불만이 믾았다고 해.”
“무얼까요?”
“박그녀가 지방행사에 참석하면 할머니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절을 했대.”
“김재규는 ‘아무리 대통령 딸이라도 그렇지, 국모는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안 변호사에게 되묻기도 했대요. 촌로들이 그렇게 절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걸 말려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겼다는 거죠.”

당시 김재규는 육사 생도이던 박진만의 행동거지에도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진만 군은 ‘육사 2학년 때부터 시내에 외출해 여의도 등지에서 사관생도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다녔다. 심한 일탈행위를 많이 했으며, 더 큰 더 큰 문제는 육사 교관들이나 육사 교장 조차도 훈육의 엄두를 내지 못해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김재규는 ‘육사의 명예나 진만 군의 장래를 위해 다른 학교에 전학시키거나 외국 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박정환에게 간곡히 건의했다. 

대통령에게 자식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김재규는 ‘각하 아들과 딸의 행동이 이렇습니다. 국사에 도움이 안 되니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하고 보고했다. 

진만 군의 불량한 행동에 대해서는 구두로 보고했고,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된 일은 서면으로 보고한 것이다. 그 후에 자식들 문제를 몇 번 언급했는데 박정환이 막무가내로 감싸돌자 ‘더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없겠구나’하고 한탄했다. 사생활이라 해도 개인이 아닌 대통령의 사생활이다. 

김영삼이 다 없애버렸지만, 그 시절 궁정동에는 대통령 안가가 있었고, 그날 밤 두 명의 여자를 불러들여 벌인 술자리에서 대통령이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게 우리 역사다. 지금 ‘유신’이 좋았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10·26 직전까지만 해도 다들 유신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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